Ambivalence - 타인과 적 - 6장. Neck and Neck. 대결
| 21.01.20 12:00 | 조회수: 785


캄비라 바투는 파그노의 어깨에서 도끼를 뽑아 내, 가리온에게 들이밀었다.

“으아아악!”

파그노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가리온은 검으로 도끼에 맞서며 외쳤다.

“타마라를 불러! 파그노를 치료해!”

캄비라 바투는 가리온에게 틈을 주지 않고 쏘아붙였다.

“지금에 집중해.”

가리온과 캄비라 바투의 눈이 다시 고정되었다.

“나는 지금 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위해 싸우고 있단 말이다!”

캄비라 바투의 힘은 가리온을 밀쳐내고 떨어뜨렸다.

“대답해라.”

캄비라 바투가 물었다.

“너에게 시에나는 어떤 존재지?”

가리온은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너 같은 녀석을, 왜. 시에나는. 담아두고 있지?”

캄비라 바투의 눈이 붉어졌다.

“내 마음도 인정해달란 말이야!”

캄비라 바투는 가리온을 향해 도끼를 날렸다.

마음이 흔들린 캄비라 바투의 도끼를 피하는 것은, 가리온에게 쉬운 일이었다.

가리온은 땅에 박힌 도끼를 보고 입을 열었다.

“나도 너에게 묻겠다.”

캄비라 바투는 도끼를 집어 들었고, 가리온은 그 모습을 그대로 보며 질문했다.

“어째서 너는 나 같은 녀석에게 질투하고 있지?”

“뭐어?”

“너의 유치한 대결 때문에 내 동료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고, 너희 동료들 몇은 죽었다. 그런 녀석이 스스로를 인정해달라고 울부짖는 것이 옳은 일인가?”

캄비라 바투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너는 시에나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자격이 없다!”

가리온의 말은 진심이었다.

바로 가까이에서 사랑을 갈구하며 몸부림치는 캄비라 바투를, 가리온은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에게나 타인에게나 무책임한, 책임 전가일 뿐이었다.

가리온은 그것을 슈마트라 초이에게서 배웠다.

가리온은 아버지에게 관심과 사랑을 갈구했지만, 사랑은 갈구하면 얻어지는 적선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가꾸어 내는 열매였다.

“네 녀석은 뻔하다. 넌 이미 흔들렸으니, 이 대결은 내가 이긴다.”

가리온은 크루어를 캄비라 바투에게 겨냥했다.

“크크크. 푸하하하하하.”

캄비라 바투는 눈물을 흘릴 정도로 크게 웃었다.

“녀석. 말은 제법 하는구나.”

이번에는 가리온이 먼저였다.

가리온은 캄비라 바투를 향해 전력으로 뛰어갔다.

틈을 줄 생각은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캄비라 바투와의 대결을 끝낼 생각이었다.

“독한 놈!”

캄비라 바투는 숨도 쉬지 않고 들어오는 가리온의 검을 가까스로 튕겨냈다.

가리온은 굽히지 않고 다시 공격했다. 이쯤은 이미 예상한 바였다.

“소용없다!”

가리온의 검이 캄비라 바투의 오른쪽과 왼쪽을 번갈아 파고 들었다.

“이잇!”

캄비라 바투의 엄청난 무게가 가리온의 검을 따라 휘잉 움직였다.

가리온이 검을 아래로 찔러올 때는 반응이 늦어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모두가 지켜 보았다.

살아남은 바기족 전사들이나 가리온의 일행이나 너나 할 것 없었다.

싸움은 중단된 상태였다.

“저것이 검성의 힘인가….”

시리엘 아즈의 말에 잔바크 그레이가 답했다.

“검성의 힘이야.”

타마라와 룸바르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야. 틀려.”

룸바르트는 싸늘한 눈초리로 가리온을 쏘아보았다.

“그자와 틀려. 틀린 힘이야. 슈마트라 초이가 가진 힘은 저런 힘이 아니야.”

그러나 룸바르트의 말은 곧 묻혀 버렸다.

가리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룸바르트 뿐이었다.

타마라는 룸바르트를 잠시 지켜보다가 가리온 가까이 다가갔다.

“둘 다 멈춰주세요. 더 이상의 싸움은 무의미할 뿐이에요.”

“너는!”

가리온 뒤로, 타마라가 나타났다.

캄비라 바투는 이제서야 타마라를 알아본 듯 했다.

‘시에나가 깨어난 즉시 크레스포로 오라고 하더니! 나와 바기족들을 몰살시킬 속셈이었나!’

캄비라 바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남아 있는 바기족 전사들이 별로 없었다.

‘언제 이렇게!’

캄비라 바투는 너무나 큰 모욕을 느꼈다.

“너의 유치한 대결 때문에 내 동료들은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고, 너희 동료들 몇은 죽었다. 그런 녀석이 스스로를 인정해달라고 울부짖는 것이 옳은 일인가? 너는 시에나 아닌 다른 누구에게도 인정받을 자격이 없다!”

가리온이 했던 말이 새삼 상기됐다.

“오랜만이네요.”

얼굴이 화끈거리는 캄비라 바투를 향해 타마라가 능청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캄비라 바투의 분에 못이긴 콧김이 눈을 전부 녹일 듯 흘러나왔다.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이유가 뭐지?”

가리온은 조심스럽게 캄비라 바투와 타마라를 주시했다.

‘타마라. 바기족들과도 사연이 있는 건가?’

타마라는 싱긋 웃을 뿐이었다.

“대결은 이제 그만 두세요. 어차피 시에나는 둘 다 선택하지 못할 테니까.”

당황하는 둘을 두고 타마라는 가리온의 일행을 불러들였다.

“모두 이리로!”

상황을 보던 바기족 전사들은 캄비라 바투를 에워싸는 줄 알고 으르렁거렸지만, 캄비라 바투의 명령에 따라 천천히 물러났다.

“시에나도 불러 주세요. 아, 쿠리오도.”

캄비라 바투에게는 좋지 않은 가장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의연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그리고 시에나와 쿠리오를 불러 탄탄하게 섰다.

시에나는 그런 캄비라 바투에게 가만히 따랐다.

빙곡은 다시 적막해지는 듯 했다.

서먹한 분위기를 쉽게 깨려는 사람은 없었다.

방금 전 가리온과 캄비라 바투의 대결을 멈춘 타마라는 이제부터 모두 같이 여행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신의 수호를 받고 있어요. 처음부터 12명이 이렇게 모이도록. 운명 지어졌죠. 가리온이나 시에나, 에바나 룸바르트. 잔바크 그레이와 시리엘 아즈, 파그노와 칸, 헤이치 페드론, 그리고 나와 캄비라 바투와 쿠리오까지.”

이구동성으로 그 이유를 물었다. 어째서 그런지, 왜 타마라가 그런 것을 알고 있는지, 타마라에게 쏟아지는 질문들은 항상 수북했다.

“잠깐만.”

타마라의 친절한 목소리가 확 바뀌었다.

“저기.”

타마라가 가리킨 곳에서 낯선 사내와 함께 차가운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모여 있던 가리온 일행은 들어온 사내를 빤히 보았다.

회색 옷을 입고 얼굴을 가린 사내는 마치 요드처럼 보였다.

“요드들이 회색 옷도 입던가?”

룸바르트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리자, 사내가 물었다.

“당신이 가리온이오?”

룸바르트는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하지 않았다.

“내가 가리온이오.”

가리온이 대답했다.

“잘됐군.”

회색 사내는 등을 돌리더니 점차 눈 속에 사라졌다.

“뭐야?”

어이없이 사라진 사내를 보며 잔바크 그레이가 중얼거렸다.

“이런 경우 대개.”

타마라가 살며시 말했다.

“암살자들이 들이닥치죠.”

“세그날레?”

잔바크 그레이가 얼른 물었다.

“글쎄…. 이런 경우에는 회색 옷을 입은 자라고 해야겠죠?”

룸바르트는 검을 단단히 잡았다.

“준비하는 게 좋겠군.”

룸바르트가 말을 마치자 마자 굉장한 폭음이 사방에서 들렸다.

폭음 소리가 좀처럼 멈추지를 않았다.

“눈사태라도 일어난 거야?”

“아니. 아까 말했던 암살자들.”

놀란 잔바크 그레이에게 타마라가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가리온은 서둘러 검을 잡았다.

가리온의 일행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제길. 참 잘됐군.”

룸바르트는 가리온을 노려 보았다.

사방이 조용해지는 듯 하더니 서늘한 바람이 일행을 한 번 쓸고 폭음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폭음만이 아니었다.

폭음은 불덩이를 몰고 왔다.

사방에 붙어 있는 눈 때문에 불덩이는 활활 타오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오래된 나무와 닿은 불덩이는 매캐한 연기를 만들어 내었다.

“케켁. 앞이 안 보여요!”

시리엘 아즈가 소리쳤다.

“룸바르트!”

가리온이 룸바르트를 불렀다.

“왜?”

“자네의 소환술이 필요하네!”

“어째서?”

“주위를 돌게 해.”

“생각 참 돌아버리게 하는군.”

룸바르트는 투덜대면서도 알데바란을 소환해냈다.

“좋아. 우선 이 놈으로 정찰을 시키자.”

이번에는 에바를 불러냈다.

“당신이 제일 중요해. 화살을 잘 날려. 적이 보이면 가차없이 쏴버려.”

에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가리온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게 좋을 뿐이었다.

“나도 싸우겠어요.”

“시에나!”

시에나는 깊은 눈망울로 캄비라 바투에게 싸우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을 허락할 캄비라 바투가 아니었다.

“시에나. 당신은 안돼. 더 쉬어야 해.”

“미치겠군. 에바도 싸우는데 너무한 거 아니야? 마법사도 멀리 공격할 수 있잖아. 너무 불공평한 처사야.”

룸바르트는 에바를 감쌌다.

“나도 싸워요.”

시에나는 싸늘하게 말했다.

캄비라 바투는 시에나를 더 말릴 수 없었다.

가리온은 캄비라 바투와 시에나를 번갈아 보다 결정을 내렸다.

“좋아. 그럼 알데바란부터.”

날아오는 불덩이들의 수가 줄어들자 화살이 쏟아져 내렸다.

시에나는 보호 마법을 펼쳤고, 에바는 화살이 오는 방향을 향해 활을 당겼다.

알데바란은 연기 속으로 사라지더니 곧 신음소리를 냈다.

“남쪽이다!”

가리온의 일행은 빙곡을 올라왔던 방향으로 다시 내려갔다.

캄비라 바투와 바기족 전사들도 가리온을 따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연기에서 벗어난 순간, 일행은 경악했다.

누가 회색 옷을 입었던 사내였는지 전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모두가 데카론의 옷을 입고 있었다.

기사, 궁사, 마법사, 게다가 룸바르트 같은 소환술사도 있었다.

“어째서….”

가리온은 멍하니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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