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bivalence - 타인과 적 - 8장. Twelve. 12명
| 21.01.20 12:00 | 조회수: 770


시리엘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지만, 칸은 가만히 있지 못했다.

"열어! 열어!"

칸은 마치 숨 넘어갈 듯이 문을 두들겼다.

"칸. 진정해. 괜찮아."

시리엘은 어떻게든 해보려 했지만, 칸은 멈추질 않았다.

"누구야?"

요새 벽 가운데서 기다란 사각형 구멍이 생기더니 매서운 눈을 가진 사람이 나타났다.

헤이치 페드론은 서둘러 도움을 요청했다.

"도와주시오. 갑자기 습격을 당했소."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요."

"도와줘! 열어줘!"

칸은 절실했다.

"사람이 다쳤어요."

시리엘은 파그노를 가리켰다

"안됐지만, 그냥 가시오. 우리는 관여할 생각이 없소."

쪽문은 허무하게 닫히려 했다.

그 순간 칸이 검을 빼어 들이밀었다.

"열어줘."

"칸!"

매서운 눈을 가진 사람만큼이나 시리엘도 놀랐다.

"피를 보기 전에, 우릴 들여보내줘."

칸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말했다. 모든 것이 진심이었다.

"어서.”

“잭슨? 무슨 일 있어?”

안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잭슨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나이가 옆으로 눈을 돌리자, 칸은 검을 더욱 들이밀었다.

“….”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칸의 얼굴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칸은 떨고 있는 것을 감추기 위해 손잡이를 더욱 꼭 잡았다.

잭슨은 칸을 낮게 훑어 보다가 입을 열었다.

“앤드류.”

“그래. 잭슨.”

“문을 좀 열어야겠어.”

“뭐? 밖이 소란스럽던데 괜찮겠어?”

“그래.”

잭슨은 칸을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럼 평소처럼 그냥 열어둘 것이지, 뭣 하러 힘들게 닫아놨던 거야. 얼음도 일부러 다 깨느라고 쉽지 않았다고.”

“알아. 알고 있어.”

잭슨은 칸이 빨리 검을 치우기를 기다렸지만, 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헤이치 페드론과 시리엘에게 파그노를 데리고 먼저 들어갈 것을 부탁했다.

“오빠를 부탁해요.”

“…. 알겠네.”

“칸….”

시리엘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파그노를 업은 헤이치 페드론을 따라 열리고 있는 요새 문으로 들어갔다.

“아니? 당신들 뭐요?”

안에서는 곧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그러나 칸은 아직 검을 거두지 않았다.

잭슨은 가만히 검 끝을 노려보았다.

“이제 원하는 것은 해결된 것 같은데?”

칸은 그제야 자신이 한 일을 깨달았다.

그리고는 잭슨의 찢어진 눈매를 보고 흠칫 놀랐다.

힘이 풀리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칸은 땅에 검을 찍으며 주저앉았다.

“후우….”

잭슨도 고개를 떨치며 긴장감을 털어냈다.

“그렇게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하더니, 거기 눌러 앉을 거요?”

잭슨은 칸에게 말을 건넸다.

“좀 있다가… 조금만 있다가….”

칸은 간신히 대답했다.

적은 끝이 없는 듯 했다.

룸바르트의 힘이 빠진 만큼 검은 무거웠다. 혼자 하는 소환술은 한계가 너무 뚜렷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에바를 돕고 있었지만, 점차 쫓기가 어려워졌다.

사방에 데카론들이 그득해서 보는 방향 그대로 계속 쫓아 붙는 것 같이 빙글빙글했다.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 거야.”

룸바르트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 망할 놈의.”

중얼거리다가, 룸바르트는 웃어버렸다.

이곳까지 온 것은 슈마트라 초이 때문이다.

가리온 때문이다.

듀스 마블 때문이다.

타마라 때문이다.

이유로 붙일 만한 것은 많았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룸바르트는 바로 자신이 제 발로 여기까지 왔다.

모든 선택은, 아버지의 죽음을 제외하고는, 자신이 해왔다.

슬픔을 이겨 보겠다고, 복수를 해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사이에 원수의 아들인 가리온과 같은 편이 되어버려서 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그래서 룸바르트는 마구 웃었다. 그렇게 자신을 비웃었다.

“바보가 따로 없어.”

그리고 다시 힘을 냈다.

“타마라가 에바 때문에 죽는다고 했으니, 어디 한 번 나를 또 궁지에 몰아넣어 볼까? 큭.”

룸바르트는 복부를 움켜쥐며 셀라임을 소환해냈다.

룸바르트의 셀라임은 다른 셀라임들을 헤쳤다.

그리고 화살이 별로 남지 않은 에바를 찾아냈다.

빙곡은 처음과 달리 상당히 조용했다.

가리온 일행과 마찬가지로, 데카론들도 힘이 빠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인원들이 가리온을 노리고 왔지만, 가리온 하나를 상대하기도 전에 추위에서 동동 구르다가 지쳐버리거나, 끈기 있는 가리온 일행들의 공격에 지치기도 했다.

게다가 세그날레의 등장에 크게 놀랐다.

타마라는 데카론들에게 끌려간 시에나를 곧바로 쫓았다.

“세…. 세그날레…!”

시에나를 데려가던 데카론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타마라는 그들을 노려보았다.

“너희들은 결코 용서할 수 없어.”

타마라의 말은 독약이 되어 그들을 괴롭게 만들었다.

타마라가 얼핏 보니, 마법을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멀리서 시에나의 마법을 깼고 덩치가 있는 사람들이 시에나를 납치한 것이었다.

타마라는 웃음을 흘리며 피를 부리려 했다.

그 때, 멀리서 소리가 들렸다.

“홀리지마! 세그날레 혼자는 아무것도 아니야!”

타마라는 소리가 난 방향을 쏘아보았다.

“귀를 틀어막아!”

“좋지 않아.”

타마라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셨다.

그러나 타마라는 곧 다시 미소 지었다.

“아발론의 은총이여!”

엉거주춤 타마라에게 칼을 들이밀던 데카론들은 다시 멈춰버렸다.

캄비라 바투가 보낸 바기족 전사들이 시에나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많이도 모여들었군.”

“도움이 필요합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시오?”

바론은 헤이치 페드론에게 친절하게 물었다.

잭슨이 까다롭게 굴던 것과 달리 빙곡의 사람들은 친절히 맞아 주었다.

“우선 이곳으로 피했으면 좋겠습니다.”

헤이치 페드론은 주위를 잠시 둘러보며 말했다.

요새이기에 많은 병력이 있을 줄 알았지만, 복수의 빙곡은 생각보다 초라했다.

“그거면 되겠소?”

“네. 그렇습니다.”

“우리끼리 이야기를 좀 해야겠소. 자리를 비켜주시오.”

바론은 앤드류를 시켜 헤이치 페드론을 데리고 가게 했다.

앤드류는 헤이치 페드론을 칸과 시리엘에게로 데리고 갔다.

“듣던 그대론데?’

오스카는 술병에서 입을 떼며 말했다. 찬 공기에 닿은 뜨거운 숨이 하얗게 피어 올랐다.

“그래….”

“때가 된 것인가?”

“글쎄. 그럴 지도 모르지.”

바론은 창 밖을 멀리 보았다.

“너무 빡빡하게 굴지 마.”

오스카도 창 밖을 보았다.

“우리가 해야 해.”

“그렇지?”

“오래 기다렸어.”

“무척 궁금하군.”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바론은 웃으며 창가에서 돌아섰다.

“그럼, 힘 좀 써볼까?”

“크크.”

오스카는 술을 마시고 긴장되는 듯 몸을 떨었다.

가리온은 문득 하늘을 보았다.

낮은 하늘이 더 이상 낮지 않았다.

“시에나는 살아 있어.”

가리온이 하늘을 보며 말하자 캄비라 바투도 하늘을 보았다.

“나도 아직 살아 있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검과 도끼를 들고서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쉬익, 하늘을 가리는 검은 그림자.

예전에 타보았기 때문에 잘 알 수 있었다.

“살아 있어…. 모두….”

하늘을 날았던 그 기분이 다시 살아나자 갑자기 흥이 나는 것 같았다.

‘나를 위해 마련된 잔치라면, 즐겨주겠어!’

가리온은 공중으로 뛰어 올랐다.

검은 보이지 않았다. 가리온이 들고 있는 것은 빛이었다.

칼부림에 취한 가리온은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폰이 그런 가리온의 모습을 가려주듯 땅을 낮게 날며 빙곡을 빙빙 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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