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 Yesterday - 역사의 시간 - 12장. Slight Fever. 미열
| 21.01.06 12:00 | 조회수: 994


크루어의 빛은 썩어버린 것 같았다. 검은 입자들에 둘러 쌓여 차갑게 가라앉은 은빛이 그렇게 냉정해 보일 수가 없었다.

가리온은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래. 이번 만이다! 다시는, 쓰지 않을 것이다!’

가리온은 고통을 짓누르며 아무것도 들지 않았던 손을 번쩍 올렸다.

“흐아아아아!”

하얀 광검이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왔다.

그러나 광검에는 시선을 두지 않았다. 될 수 있으면 손에 잡히는 느낌도 피하고 싶었다.

가리온의 두 눈에는 오직 살기와 분노만이 가득 찼다.

“죽어라!”

광검은 팔목을 잡은 뱀의 머리를 그어내고, 다리를 휘감은 몸통을 잘라냈다.

쉬이익.

물컹한 것들이 군데군데 땅으로 떨어졌다. 열에 타는 듯 꿈틀거리는 것이 아직 죽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다시 뭉치지 않았다.

가리온은 그것들을 노려보고는 숙주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 숙주는 또 다시 투명해졌다.

투명한 입자 속의 시에나의 표정은, 꼭 노라크 동굴에서 쿤다의 위력에 놀라 멍해졌던 표정 같았다.

그리폰에서 자신을 치료해주던 표정과 무거운 크루어를 끌고 폭군의 나무 뿌리를 자르던 시에나의 표정이 눈앞을 아른거렸다. 어쩐지 머리가 아찔했다.

“….”

가리온은 시에나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부르는 순간 모든 결심이 물거품이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아련하고 뜨거운 마음을 가리온은 어떻게 감당해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가리온은 고개를 흔들어 정신을 차렸다. 더 이상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꺾일 수 없었다. 그것은 결코 꺾여서도 안 되는 것이었다.

“지금부터, 너를 없애겠다.”

가리온은 목표를 향해 다시 뛰었다.

샤아아.

가리온이 마지막 일격을 준비하는 사이 뱀들도 낮게 몸을 움츠리고 가리온을 향해 다가왔다. 그것들은 가리온이 숙주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막으려고 가리온 주위를 겹겹이 쌓았다.

가리온은 피하지 않았다.

“우와아아아!”

함성을 내지르며 검을 높이 치켜 들었다.

크루어는 어느 새 검성의 검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리온은 최대한의 힘으로 크루어를 뱀들의 머리에 꽂았다.

붉은 눈동자들은 크루어 주위를 피해 삭삭 물러났다.

가리온은 크루어를 밟고 뛰어 올랐다.

“마지막이다!”

무의식 중에 크루어를 비운 손에서도 광검이 튀어나왔지만 가리온은 알아채지 못했다.

가리온은 오로지 시에나의 얼굴만 보았다.

머리 속 생각을 알 수 없게 하는 아련한 시에나의 얼굴은 무척이나 슬펐다. 가리온의 눈에는 온 몸에 도드라져 있는 붉고 푸른 핏줄에서도 그 슬픔이 짙게 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아.”

가리온은 그 슬픈 표정을 보면서 오른손에 있던 광검에 힘을 주었다.

그리고 시에나의 어깨를 찍었다.

샤아아.

광검을 피해 투명한 입자들이 재빨리 흩어졌다.

시에나의 얇은 어깨뼈가 유리처럼 반짝이며 잘게 부서져 나갔다. 붉은 핏방울이 부서진 뼛조각을 따라 튀어 올랐다.

가리온의 눈에서 왈칵 샘이 솟았다.

가리온은 슬픔을 억누르려 더욱 크게 소리질렀다.

“하아아아아!”

시에나의 봉긋한 가슴까지 검이 그어졌다.

시에나가 입었던 주홍색 오클라스 조각은 핏방울과 함께 호랑나비가 나풀거리듯 날아갔다.

“으아아아아!”

눈물 샘이 점점 더 깊게 고였지만, 가리온은 눈을 감지 않았다.

눈을 감는 순간, 더 이상 검에 힘을 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욱 큰 상실감이 가리온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었다.

샤아아.

검고 물컹한 것들은 뱀의 탈을 벗고, 다시 뭉쳐 가리온 둘레로 길게 벽을 쳤다. 그리고 아래부터 위로 입을 봉해버렸다.

가리온을 완전히 가두어 먹어 치울 셈이었다.

시에나의 몸뚱이는 더 이상 그들의 숙주로서 적합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리온을 노렸다.

가리온도 곧 그것을 알아차렸다.

“추악한 것들.”

가리온은 주위를 노려보며 시에나에게서 검을 거두었다.

털썩, 시에나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가리온은 돌아보지 않았다.

의도대로 숙주가 되었던 시에나를 찔러서 괴물을 약하게 만드는 데 성공한 듯 했지만, 그것이 정말로 이긴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가리온의 마음 속에는 승리감은 전혀 없었고 허무함만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나중에 고이 묻어주리라는 생각만 하기로 했다.

시에나를 잃으면서까지 했던 행동을 후회로 돌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다.

“그래…. …해 보자.”

광검을 치켜 들은 가리온은 앞에 있던 벽을 찔렀다. 물컹한 벽은 지금까지처럼 잘려나가는 듯 했다.

가리온은 곧 그 예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컹한 입자들은 가리온이 자른 부분을 재빨리 다시 덮고 덮었다.

가리온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주위를 돌며 광검을 휘둘렀다. 그렇지만 상황은 계속 제자리로 돌아왔다.

아버지를 감추고 시에나를 잃게 만든 괴물은 끝까지 가리온을 괴롭혔다.

괴물들은 가리온을 숙주로 삼으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바로 코앞에서 붉은 눈동자가 쉴새 없이 왔다갔다했다. 눈알마다 꼭지점들이 세 개씩 보였고, 그것들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가리온은 처음에 당했던 독침을 떠올렸다.

“후우.”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내려왔다.

회오리를 유지하느라 그런지 검은 연기를 뿜는 입술이 가리온을 향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고, 가리온을 감싼 벽이 점점 좁아지면서 독침을 곧 쏠 것이라는 게 가장 시급한 문제였다.

“회오리…!”

그 순간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쓸어 버린다!”

가리온은 팔을 휘저었다.

검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미풍이 일었다.

“그래!”

점차 속도를 높이자 미풍은 큰 바람이 되었다.

“으아앗!”

가리온의 양 팔에서 뜨거운 바람이 휘몰아쳤다. 검은 입자들이 물처럼 철벙, 검의 흐름에 따라 튀었다.

가리온은 그대로 돌진했다.

붉은 눈알들이 후드득 반으로 쪼개졌다. 눈알을 채웠던 붉은 액체가 스르르 흘러내렸다.

“하아. 하아”

가리온은 격한 움직임에 숨을 몰아 쉬었다.

뜨거운 열기를 뿌리는 가리온의 모습은 회오리를 닮은 듯했다.

하지만 가리온은 점차 지쳐가고 있었다.

가리온은 쉴새 없이 팔을 돌리고 몸을 움직여야 했다.

붉은 눈알은 가리온이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는 순간이 있으면 독침을 쏘았고, 작고 작게 갈라진 검은 입자는 몸을 차지하려 사정없이 달려들었다.

멈추는 순간 가리온은 숙주가 될 것이었다.

가리온은 이를 악물고 눈을 부릅떴다.

“허억. 허억.”

그래도 가쁜 숨은 멈출 수가 없었다. 심장의 고동은 점차 커지고만 있었다.

‘제길! 도대체 언제까지!’

가리온의 감정이 흔들리는 순간, 기류가 흩어졌다.

“으아악!”

가리온은 재빨리 바람을 휘어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독침은 가리온의 틈 여기저기를 파고 들었고, 검은 입자는 갑옷에 달라붙어 가리온의 살갗을 찾아 기어 다녔다.

가리온의 얼굴에 노란 고름이 돋았고, 곧 푸르스름해졌다.

가리온의 신경은 점차 둔해졌고, 괴물의 움직임은 몇 배로 빨라졌다.

한 순간 포기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포기해버리고 나면 더 이상 어렵고 힘들게 싸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아버지는 자신을 좋게 보지 않았고, 그렇다고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를 구한다 하더라도 두 팔을 잃어버린 지금, 더 이상 검을 들 수 없는 것에 좌절하실 수도 있고, 지금까지 가리온이 이겨내 왔던 고비들을 대수롭게 생각하시지 않을 수도 있다. 인카르의 청기사가 되었지만 듀스 마블이 일을 벌린 이상 자신이 청기사 단장이 될 수는 없을 것이며 어쩌면 청기사단 자체가 없어질지도 몰랐다.

포기라는 유혹은 몹시도 강했다.

“그냥….”

가리온의 손에서 광검의 빛이 흐려졌다.

빨간 눈알들의 움직임에 취해서인지, 몸을 모두 검은 입자에 맡기고 싶어졌다.

그 순간 시에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밝게 웃고 있던 그녀는, 어깨가 잘리더니 온 몸이 산산조각 났다.

“안돼!”

가리온은 포기해서는 안 되었다.

팔을 들 수 있을 때까지, 다리를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크루어를 휘둘렀다.

고통을 초월한 가리온의 눈은 더욱 매서워졌다.

“나는 나간다!”

하얀 광검에 푸른 빛이 더해졌다.

광검에 닿은 지긋지긋한 검은 입자들이 피지직 연기를 내며 공중에서 사라졌다.

“흐아아앗!”

속도가 다시 붙기 시작했다.

가리온은 회오리가 아니라 태풍이었다.

“선전하는군.”

검은 입술의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렇지만 내 공을 빼앗길 수는 없지.”

손가락 마디만큼이나 자란 검은 손톱을 들어 올렸다. 검은 입술과 잘 어울리는 손이었다.

그 입에서 짧은 한 마디가 울렸다.

“소멸.”

가리온을 둘러 쌓았던 검은 입자들이 전부 터졌다.

붉은 눈알은 땅을 구르다가 스물스물 녹았다.

가리온은 아직 열기가 가시지 않은 검을 들고 주위를 살펴 보았다.

“하아. 하아. 끝난 것인가?”

위험이 멈추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어쩐지 꺼림칙했다

가리온은 바닥에 꽂힌 크루어를 향해 다가갔다.

멀지 않은 곳에 시에나가 있었다. 이제는 이름을 부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아…. 시에나….”

가리온에게는 주저 앉고 싶을 만큼 너무나도 슬픈 광경이었다.

“시에나….”

하지만 가리온은 힘을 더 내야 했다. 이제야 겨우 아버지를 구하러 가게 되었다.

“기절.”

한 순간 아찔했다. 가리온은 그대로 쓰러졌다.

검은 손톱은 그제서야 손을 거두었다.

“회오리 바람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작업을 끝내 볼까?”

문신이 가득한 허벅지와 그 아래까지 길게 모아진 머리칼이 흔들렸다. 늘씬한 종아리가 가리온을 향해 뻗어 나갔다.

“자아, 잠시만 쉬세요. 그러는 편이 좋을 거예요. 후후…. 이제야 불씨가 살아났거든요. 정말 힘든 싸움을, 드디어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후후후.”

가리온의 얼굴에 검은 손톱이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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