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rak - 이교도의 유물 - 10장. Contestant. 경쟁자
| 20.12.16 12:00 | 조회수: 983


"내가 말이지, 살다 살다가 이런 회의는 또 난생 처음이야. 여하튼 간에 기사 놈들은 예의 나부랭이는 어디다 팔아먹은 건지. 씻을 물은 준비했어? 빨리 씻고 가야 할 곳도 있는데."

"분부하신 대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래? 확실하게 미온수야? 지난번에도 어떤 우라질 놈이 물을 너무 뜨겁게 해 놓아서 내가 데어 죽을 뻔 했단 말이야.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해야지, 원. 그런데 내 아들 놈은 어디서 농땡이 치고 있어?"

"저기, 그게……."

"어디 있어? 어디 있느냐고?"

인카르 신전에서 집으로 돌아 온 티몬 겐조는 회의장에서 쪼그리고 앉아 말없이 펜만 놀리던 것과는 달리 온 몸으로 신경질을 뿜어내고 있었다. "에잉, 어디서 우물거리고 있어? 이거야 원, 답답해서 쯧쯧쯧…… 내가 직접 찾고 말지. 룸바르트! 룸바르트! 이 놈아! 이 놈은 지 사촌이 기사계를 가지게 됐는데."

"저기……. 외출을……."

"뭐야? 그럼 진작 말을 했어야지? 왜 괜히 소리나 지르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티몬 겐조의 집에 새로 온 하녀 아이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개를 연신 수그렸다.

"새로 온 계집이라고 오냐 오냐, 봐주었더니만, 응? 이래서 못 배운 것들은 쓸모가 없어. 밥 먹여 주고 잠재워 주면, 어물거리지 말고 재깍재깍 맡은 일을 해 놔야 될 것 아냐? 사람 하나 어디 갔는지 알아내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디로 갔대?"

"……. 예?"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들어? 쯧쯧, 내 아들놈 어디 갔냐고?"

"저기……. 그게……."

"빨리 말을 해 보란 말이야!"

하녀 아이는 눈을 부릅뜨고 몰아세우는 티몬 겐조의 모습에 겁을 잔뜩 집어먹고, 드디어 눈물까지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어, 뭐야! 울어? 내가 때리기라도 했단 말이냐? 어디서 울어? 여기 초상났어? 응?"

티몬 겐조는 더더욱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런 막돼먹은 계집애는 도대체 누가 데려 온 거야? 마고! 마고! 이 놈은 또 어딜 간 거야? 마고!"

"예, 예, 여기 있습니다!"

티몬 겐조의 저택을 관리하는 집사 마고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 계집앤 뭐야?"

"지난번에 룸바르트 도련님이 데려온 하녀 아이입니다."

"뭐야? 하여간 쓸데없는 짓만 하고 다녀요. 뽑더라도 좀 제대로 된 것을 골라 볼 것이지."

티몬 겐조는 하녀 아이를 눈이 튀어나올 듯이 째려보았다.

"룸바르트 도련님께서는 지금 방 안에 계십니다."

"뭐야? 외출했다며? 어디서 입을 놀려? 네 년은 그 놈이랑 또 무슨 관계냐? 지금까지 둘이서 무슨 짓거리를 한 거야? 응?"

외출했다 돌아와 자기 방에 있던 룸바르트는 아버지 티몬 겐조의 목소리가 들리자 부리나케 나왔다. 이러다가 내쫓긴 하녀아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방금 들어왔어요."

"룸바르트! 이 놈아! 이 년은 또 뭐냐? 응?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려야지! 네 친척 다이몽은 오늘 기사계를 꿀꺽 집어 삼켰단 말이다! 넌 그 정도까지는 못해도, 인카르 신관은 되어야 할 것 아니냐! 응? 이 아비가 너에게 뭘 못해줬냐? 어미없이도 그저 아쉬운 것 없이 그렇게 공을 들여서 키워왔는데, 응? 이젠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아, 그 계집애는 아니에요."

룸바르트는 소문난 미남자이면서, 바람둥이였다.

헬리시타의 뭇 여성들은 룸바르트의 은은한 은발과 기막히게 대조적인 구릿빛 피부, 인카르의 서기관인 아버지의 부유함,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반항기 어린 그의 매력에 끊임없는 찬사와 감탄을 보냈다. 룸바르트는 그러한 찬사와 감탄을 지극히 당연한 듯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아이고. 어쩌다가 니 어미는 너 같은 놈을 두고, 먼저 세상을 떠났냐."

"그만하세요. 좀. 그나저나 다이몽이 기사계로 파견되는건 결정된 건가요?"

"글쎄, 그게 참. 내가 오십 평생을 살면서 오늘같은 날은 또 처음이구나. 세상에 회의를 하러 갔더니, 아이리스 비노쉬가. 너 아이리스 비노쉬 알지? 궁사계 거물 있잖냐. 그 아이리스 비노쉬가 비나엘르 파라이님하고 같이 나타났어."

룸바르트는 티몬 겐조가 이야기에 열중한 틈을 타, 집사 마고가 새로 온 하녀 아이를 데리고 가도록 눈짓을 했다. 집사 마고도 이러한 일이 일상사라, 얼른 눈치채고 하녀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그러한 와중에도 티몬 겐조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 아이리스 비노쉬가 어지간하면 여기 헬리시타에 나타나지도 않는데, 오늘은 회의까지 참석했더구나. 여태껏 중립이고 뭐고 하면서 자존심을 지켜왔지만, 지들도 공격을 막아내려니 별 수 없지."

룸바르트는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궁사계가 헬리시타에 나타났다는 것에는 적지않이 놀랐다. 궁사계의 사람들은 그만큼이나 남의 앞에 나서기 꺼려하는 종족이었다.

"여궁수들이 그렇게 육감적이라면서요?"

"허허. 그건 그렇더라. 아이리스 비노쉬도 가죽 옷을……. 예끼, 이놈아! 그런데 관심을 가지지 말고 네 사촌 다이몽을 좀 본받아라! 응? 오늘 회의 때, 다이몽은 드디어 파견 허락을 받았단 말이다! 이제 기사계는 다이몽거라구!"

룸바르트는 찡그린 얼굴을 돌려 하늘만 쳐다봤다. 언제나 답답한 집안 분위기였다.

"아휴……. 룸바르트. 너도 오늘 이 아버지와 같이 조디악 회의에 참석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냐! ……."

"어차피, 다이몽이 후보로 뽑혔으니, 저는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했다구요."

"아냐. 아냐. 그 대장장이 놈 있지 않느냐. 그 놈도 어디서 사람을 하나 구해가지고 들어왔더라."

"아이언 테라클이요?"

"그래. 그래. 그 놈도 젊은 청년을 데리고 왔단 말이지. 이름이 뭐더라. 그래. 그래. 잔바크 그레이! 잔바크 그레이였어. 그레이라……. 처음 들어 보는 가문 같은데……."

"누가 아이언 테라클 같은 대장장이한테 자기 자식을 내주겠어요.."

"하긴, 그렇다. 그렇지? 그래. 그러니까 감히 인카르 신전 회의장안에서, 그것도 회의 도중에 그렇게 미친 말처럼 불같이 날뛰지. 허허. 말세야. 말세."

"무슨 일이 있었어요?"

"에이. 회의 중에 있었던 일들은 모두 일급기밀이라서 누설하면 안돼. 흐흠."

룸바르트는 피식 웃어 버렸다. 어차피 조금만 기다리면, 룸바르트 자신이 애써서 조르지 않아도 아버지 티몬 겐조가 먼저 술술 불어버릴 웃기는 일급기밀이었다. 과연 10초도 지나지 않아, 티몬 겐조는 먼저 얘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내가 룸바르트 너에게만 특별히 이야기해주마. 그래도 너는 내 아들이 아니더냐. 그래. 그래. 그런데 아이리스 비노쉬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는 건데."

"아이리스 비노쉬도 좋지요. 정말 그렇게 예뻐요?"

"에이, 이놈아! 너 때문이라도 그 얘기는 정말 안 되겠다. 네 사촌 다이몽을 본받아 보라니까!"

"알았어요, 알았어. 그럼, 다이몽 얘기나 좀 해보세요."

"그럴까? 흐흐. 그래. 그래. 그 때 나는 비나엘르 파라이님이 회의장을 빠져나가신다고 적고 있었지……."

바기족 이주에 대한 안건이 끝나고, 비나엘르 파라이와 아이리스 비노쉬는 더 이상의 회의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게 비나엘르 파라이가 뒤로 물러서자, 듀스 마블이 그녀를 대신해 회의를 진행시켰다.

"자, 그렇다면, 다음 안건으로 넘어가 볼까요."

인카르의 서기관 티몬 겐조는 고개를 살짝 들어 다이몽을 바라보았다. 다이몽도 티몬 겐조를 쳐다보면서 눈인사를 했다. 티몬 겐조는 다이몽의 삼촌이었다.

'정말 훌륭하게 컸어. 정말. 우리 룸바르트도 저렇게 커서 인카르에 입성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 못된 놈은 맨날 이 홀아비 고생만 시키니……. 아냐, 아냐. 우리 룸바르트가 얼마나 잘 자랐는데. 그 놈이 또 날 닮았거든. 인물 출중하지. 머리 좋지. 허허. 그래. 다이몽이 듀스 마블의 추천을 얻은 데는 순전히 무언가 있어서야. 뒷거래를 했다거나……. 예를 들어……. 그래. 딜을 바쳤을 거야. 역시, 돈이 제일이지. 몇 딜이나 바쳤을까……. 흠……. 지난번에 10억 딜 어쩌고 하던데……. 설마……. 10억 딜!'

자기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진 티몬 겐조는 머리 속으로는 얼마가 오고 갔을지 생각하느라고 바빴고, 두 눈은 다이몽 루세를 쫓느라 바빴다. 그리고 왼손은 회의 내용을 적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혼자 바쁜 티몬 겐조와는 상관없이, 듀스 마블은 여유 있게 회의를 진행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후보자를 발표하겠습니다. 티몬 겐조, 좀 도와주겠나."

"예, 예."

티몬 겐조는 비굴해 보일 정도로 허리를 굽실거리며, 회의 기록서 옆에 있던 메모를 듀스 마블에게로 가져다 주었다. 듀스 마블은 메모를 보더니 만족한 얼굴로 읽어 내려갔다.

"현재까지 기사계 파견 안건에 대한 후보자는 단 한 명뿐이로군요. 루세 가문의 다이몽!"

듀스 마블을 추종하던 무리들이 박수를 쳤다. 그는 여태껏 묵묵히 앉아 있었던 젊은 청년에게 손짓을 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하게끔 했다.

다이몽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조디악들에게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 본 티몬 겐조는 자기 자신이 후보 추천을 받은 것처럼 마냥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그 순간 회의장 뒤쪽 구석에서 인카르의 마법사들이 제일 싫어하는 아이언 테라클의 목소리가 삐죽이 불거져 나왔다.

"그렇지 않소! 여기 정통 기사계의 후보가 있습니다!"

잔바크 그레이도 다이몽 루세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그러나 누구 하나 박수를 치지 않았고, 하다못해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아이언 테라클은 그들의 이런 반응을 대충 짐작 하고 있었지만, 잔바크 그레이에게는 높은 장벽이 눈앞을 콱 가로막는 느낌이었다.

"잔바크 그레이입니다!"

장내는 잠시 조용해졌다. 서기관 티몬 겐조만이 실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잔바크 그레이를 훔쳐보았다.

'잔바크 그레이? 뭐, 건장하게는 생겼구먼. 흠. 에이. 입술이 얇은 걸 보니, 성미가 급하겠어.'

티몬 겐조는 자신의 얇은 입술에 침을 바르며 회의 기록서에 잔바크 그레이라는 이름을 적어 넣었다.

'그런데, 교육은 제대로 받은 놈인가?'

모두가 짐짓 관심을 끊고 있었지만 티몬 겐조는 새로 나타난 젊은 청년이 궁금하기만 했다.

"아이언 테라클, 이번 기사계 파견자 추천은 지난 달에 이미 끝났소." "흥, 마법계끼리만 정해 놓고, 이제 와서 그것을 따지라는 말이오?"

"당신도 인카르의 법에 따라 조디악이 된 사람이오. 어떻게 조디악이 그런 것도 모르오? 또 당신이 한 두 살 먹은 아이도 아닌데 그런 것쯤이야 스스로 알아봐야 하는 것 아니겠소. 아아! 대장간 사업하느라 바쁘셨겠지!"

듀스 마블은 아이언 테라클을 대놓고 비웃었다. 다른 조디악들도 듀스 마블을 따라 킬킬거렸다. 잔바크 그레이는 듀스 마블의 행동이 너무하다 싶었지만, 아이언 테라클은 화도 내지 않고 얼굴에 조소를 흘리며 말했다.

"그렇지요. 그렇지요. 금광맥과 조디악 자리를 바꾸었지요. 흐흐흐."

"아이언 테라클!"

듀스 마블과 아이언 테라클의 언성은 점점 높아졌다. 잔바크 그레이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듀스 마블을 옹호하는 입장이었지만, 아무도 그들의 말싸움에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잔바크 그레이가 아이언 테라클을 거들기 시작했다.

"제노아는 기사들이 만드는 도시지, 마법사들이 만드는 도시가 아닙니다!"

"누가 자네에게 발언권을 주던가?"

듀스 마블은 잔바크 그레이에게 엄하게 호통을 쳤다. 여태껏 등을 돌리고 있었던 다른 신관들도 일제히 잔바크 그레이를 노려보았다. 당황한 잔바크 그레이는 아이언 테라클을 바라보았지만, 아이언 테라클은 여전히 듀스 마블을 향하여 씩씩거리고 있었다.

잔바크 그레이는 당차고 자신감이 넘치는 젊은이였지만 성질이 급했다. 한 번 뱉은 말은 이미 엎질러진 물, 언쟁은 이미 시작된 셈이었다. 뒤로 물러날 곳도 없었다.

잔바크 그레이는 듀스 마블의 무거운 표정에 기가 눌리는 듯 했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하기로 했다.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기사계가 필요한 건 정통 기사이지 인카르의 끄나풀을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전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기가 막혔다. 듀스 마블도 어이가 없었다. 아이언 테라클 조차도 잔바크 그레이의 거침없는 말에 놀라 찔끔했다. "자네는 이 회의장 안에 있을 자격조차 없단 말일세."

"자격이요? 저는 기사계에서 자라 기사로서의 거친 훈련을 거쳐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 무슨 자격이 필요하단 말입니까? 저는 이미 마음속에 기사계를 위해 생명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일단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는 배짱 탓인지 그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누구보다 노력한 것은 잔바크 그레이, 바로 자신이었다. 그는 기사계를 마음대로 주무르려는 인카르의 늙은 마법사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듀스 마블과 조디악들은 더욱 비아냥거리며 코웃음만 칠 뿐이었다. 잔바크 그레이는 끝내 듀스 마블을 향해 소리쳤다.

"정 그렇다면, 여기서 실력대결을 하면 될 것 아니오!"

잔바크 그레이는 분에 못 이겨 검을 빼 들었다. 금속성의 소리가 차가운 인카르 신전 내 대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늙은 마법사들은 모두 놀랐고, 듀스 마블은 얼굴에 노기를 띠었다.

"이 놈이!"

참다 못한 다이몽 루세도 허리춤으로 손이 갔다. 듀스 마블은 다이몽 루세를 저지하며 말했다.

"이 곳은 성스러운 인카르의 신전이다. 네 놈이 무엇인데 여기서 이런 행패를 부리는 것인가! 아이언 테라클. 저런 젊은이를 기사계의 대표로서 내보내겠다는 말이오? 저런 무식하기 짝이 없는 소인배가 기사계의 대표란 말이오?"

아이언 테라클은 할 말을 잃었다. 잔바크 그레이가 성미가 급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회의장 내에서 검까지 빼어들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언 테라클도 내심 기분이 상해 있었다. 늙은 마법사들만 잔뜩 있는 이 자리에서 기사계가 한낱 마법계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은 비참한 일이었다.

"인카르의 단일 후보라는 젊은이가 얼마나 검을 쓸 줄 아는지 어디 좀 봅시다. 흠."

잔바크 그레이는 아이언 테라클의 말에 힘을 입어 의기양양하게 앞으로 나섰다. 날렵하게 마른 체구의 다이몽 루세도 더는 봐줄 수가 없다는 듯이, 앞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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