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orak - 이교도의 유물 - 4장. Ancient letter. 피로새긴 문자
| 20.12.16 12:00 | 조회수: 1,044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습하고 냉랭한 한기는 빛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이렇게 어두컴컴한 통로는 사방이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울퉁불퉁하기까지 했다. 가리온과 시에나는 조심조심 걸어갈 수밖에 없었다.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하면, 차가운 모서리들에 부딪혀 결코 작지 않은 상처를 입을 것 같았다. 시에나는 참기 힘든 한기와 어둠에 조바심이 나서 마법을 이용해 불을 켤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빛 가까이로 갈수록 통로의 경사가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그만두기로 했다. 가리온과 시에나는 경사에서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축축한 벽을 밀어내며 내려가야만 했다. 혹시라도 시에나가 미끄러지게 되면 제동을 걸기 위해, 가리온은 다리에 단단히 힘을 주면서 앞서서 내려갔다. 계속 힘을 준 나머지 다리에서 쥐가 날 정도가 되었지만 통로는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가리온은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만, 버틸 수 있겠소? 다리에 쥐가 나서……." "네? 그렇군요……. 어쩔 수 없죠." 가리온은 시에나가 동의하자 울퉁불퉁한 곳에 앉아 다리를 주물렀다. 시에나는 뒤쪽에서 가리온을 돕기로 했다. "라이트!" 시에나의 팔찌가 마법으로 빛을 생성해 통로를 환하게 비추었다. 노란 빛이 비춰지자 가리온의 갈색 머리가 더 환해지며 금빛으로 반짝였다. "어디 좀 볼 수 있을까요. 제가 도와드릴게요." 가리온은 시에나의 힘을 빌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판단되어, 좁은 통로 안에서 몸을 살짝 비켜 다리를 옆으로 돌렸다. 청색이 은은히 감도는 가리온의 갑옷을 찬찬히 살피던 시에나가 비명을 질렀다. "아!" 시에나의 비명 소리에 덩달아 놀란 누트 샤인은 뒤따르던 걸음을 멈추고 몸을 낮추었다. 시에나가 만든 노란 불빛 아래 갑옷을 점검하던 가리온은 갑작스러운 비명에 당황했지만, 곧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가리온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가리온과 시에나의 앞에서 무언가가 꿈틀대며 일어서고 있었다. 시에나가 외쳤다. "스켈리톤 폰이에요!" 그 순간 외침소리를 덮어버리려는 것처럼 시에나의 등 뒤에서도 흙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빛을 들이대니 역시 형상을 알아보기 힘든 것이 일어서고 있었다. "원래 아레스 숲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여기에 나타나다니……. 게다가 형태도 좀 이상해요." 동굴이 워낙 좁아서인지, 오래된 것들이라서 그런지 스켈리톤 폰의 모습은 기묘했다. 팔에 붙은 뼈가 지나치게 길어 땅에 끌리는가 하면, 다리에 붙은 것은 손가락뼈인지 지나치게 짧고 가늘기도 했다. "형태가 중요한 건 아니죠. 저것들의 약점은 뭐요?" 가리온은 다리에 쥐가 났던 것을 잊어버린 듯, 재빨리 크루어를 움켜쥐며 시에나에게 물었다. "스켈리톤 폰은 베어도 자꾸 다시 합쳐지기 때문에, 물리력만으로 해치우기는 힘들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대충 모습을 완성한 스켈리톤 폰은 삐거덕거리며 서서히 시에나와 가리온 쪽으로 다가왔다. "제가 인카르 수호마법으로 성스러운 힘을 전달해 드릴 테니, 가리온님께서는 크루어를 사용하셔서 관절 부위를 베세요." "그렇게 하면, 스켈리톤 폰이 지겹게 일어나는 일은 없게 되는 겁니까?" "네. 그래야 해요……." 사실, 시에나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듀스 마블의 지시로 아레스 숲에 자주 드나들었지만, 대부분 치료를 해주거나 이동을 돕는 일들이었기에, 실제로 기사를 도와 싸우게 된 지금 상황이 내심 긴장되고 떨렸다. 이런 시에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가리온이 속삭였다. "괜찮아요. 인카르의 시에나님. 어서 성스러운 힘을 제게 주시죠." 긴장한 시에나와 달리, 가리온은 흥분하고 있었다. 이제야 날카로운 크루어의 힘을 직접 시험해보게 되어 가슴이 뛰었던 것이다. 시에나는 그런 가리온의 모습을 보고 마음을 안정시킨 뒤, 정신을 한 곳에 몰입했다. "……. 홀리 아스트랄 바인!" 시에나는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작게 웅얼거리다가, 완결 주문을 큰 소리로 외쳤다. 주문 소리가 좁은 통로에 울리면서 크루어에 하늘색 빛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뒤쪽에서 이를 지켜 본 누트 샤인은 하늘색 빛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저 하늘색 빛은 무엇이지?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누트 샤인이 몸을 숨기고 있는 동안 검에 성스러운 기운이 차오르는 것을 느낀 가리온은 부스스 걸어오고 있는 스켈리톤 폰을 향하여 미끄러져 내려갔다. “이야앗-!” 그의 몸이 미끄러지면서 그대로 가속도가 붙었고, 그 힘을 이용하여 스켈리톤 폰에게 크루어를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사선을 그은 가리온은 발에 힘을 주어 미끄러지는 것을 멈춘 뒤, 다시 아래에서 위로 검을 갈랐다. 단단한 뼈가 크루어에 의해 단번에 갈라졌다. ‘굉장한데!’ 가리온은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뼈를 단번에 잘라내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스켈리톤 폰의 가슴은 사선이 두 번이나 그어지면서 네 등분 되었고 마법의 도움을 받아서인지 스켈리톤 폰은 다시 합쳐지지 않았다. 가리온은 시에나를 향하여 기분 좋게 말했다. "관절을 다 끊어 검을 네 번 휘두르는 것보다, 이렇게 두 번 갈라 네 등분 하는 편이 빠르겠지요?" 시에나는 이 광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크루어는 대단한 검이기는 했지만, 예리하고 민감한 것이라 다루는 사람의 실력에 따라 날카로워지기도, 무뎌지기도 하는 검이었다. 때문에 가리온이 자연스럽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대단한 실력자의 솜씨라고 할 수 밖에 없었다. 가리온은 순식간에 몰려든 스켈리톤 폰을 물리쳤지만 주위에서는 계속해서 부스스 일어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이렇게 뼈가 많지…….” 가리온은 입구 주위에 있던 무덤이 떠올랐다. 그 무덤에 있던 뼈들이 계속해서 여기에 나타나는 것이라면, 스켈리톤 폰을 처리하는데 간밤에 싸웠던 만큼의 시간이 걸릴 것만 같았다. "이런걸 계속 상대하는 건 아무래도 시간낭비 같군요." 정신력을 유지하며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던 시에나에게 가리온이 말했다. "그만 이리로 와요. 여길 빨리 빠져나가는 것이 더 효율적이겠어요." 시에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려왔다. 마음은 급했지만 정신력을 유지하려면 성급한 이동은 삼가야 했다. 하지만 뒤에도 스켈리톤 폰이 있었기 때문에 시에나의 심리적 압박감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미끄러워서 가기가 힘들어요." "그냥 미끄러져 내려오십시오! 제가 이쪽에서 받아 드리겠습니다!" 시에나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울고 싶은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발을 디뎠다. 그 순간, 뒤에서 다가오던 스켈리톤 폰의 팔이 시에나의 등에 닿았다. “꺄아-!” 축축한 뼈가 얇은 오클라스에 닿자 시에나는 기겁하며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시에나가 마법으로 밝힌 불도 꺼져버렸다. 정신력이 흐트러지면서 마법도 흐트러진 것이었다. 놀란 마음에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던 시에나는 비명을 지르며 울퉁불퉁한 통로에 그대로 넘어져 버렸다. 시에나가 아예 정신을 잃어버릴 찰나, 가리온이 달려와 시에나를 잡아 주었다. "괜찮으십니까?" 시에나는 가리온의 얼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인 채 색색거렸다. "언제까지 이런 스켈리톤 폰이나 상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시에나는 가만히 가리온을 올려다 보았다. 원망의 눈빛이 가득했다. “……. 어쩔 수 없군요. 그냥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 “예?” 쓰러진 시에나를 일으켜 세운 가리온은 성큼 뛰어 미끄러져 내려갔다. 길이 울퉁불퉁하긴 했지만, 가리온이 사뿐히 뛴 덕에 시에나는 무사히 통로 끝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누트 샤인도 스켈리톤 폰이 뒤따르기 전에, 서둘러 가리온과 시에나를 쫓아갔다. 가리온과 시에나가 통로 끝까지 다다랐을 때 두 사람을 이끌어 준 빛은 신기하게도 바닥으로부터 흘러나오고 있었다. 시에나는 바닥에서 흘러나온 빛을 입구에서부터 보고 따라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빛을 따라 왔는데, 어떻게 빛이 이 아래에서 나오는 거죠? 이해할 수가 없네요.” "그렇군요. 일단 내려가 보도록 합시다." 가리온은 빛이 흘러나온 곳으로 먼저 내려간 후 시에나가 무사히 내려오도록 도와주었다. 두 사람이 통로를 지나 들어온 공간은 요요한 자줏빛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시에나는 자줏빛의 묘한 분위기에 홀려버리는 것만 같았다. "이곳……. 꼭 마법을 부려 놓은 곳 같아요……." 이런 시에나의 말에 동조하듯이 가리온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런 곳이 동굴이라니…….” 실제로 노라크 동굴은 동굴이라 하기엔 너무 밝았다. 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종유석들이 참 신기하게 생겼네요." 시에나가 위를 가리켰다. 꾸불꾸불 기괴한 모양의 광석들이 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여기 광석들은 다 파란 것 같군요." 가리온은 시에나가 가리킨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리온의 말처럼, 동굴 벽 바로 옆에 나지막하게 깔려있는 광석들에서는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그 광석에서 우러나온 빛들이 어우러져 동굴 안을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 푸른 광석들은 저 멀리까지 이어져 있었다. 벽과 바닥의 모서리에는 이끼가 잔뜩 끼어있었다. 이끼 위에도 광석들은 빛나고 있었다. 곳곳에 있는 광석들 때문인지, 방금 전 통로에서의 좁고, 어둡고, 축축함은 물론, 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추위는 없었다. “이곳은 좀 더운 것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겠소. 시에나. 저길 봐요.” 가리온은 바닥을 가리켰다. 땅이 갈라진 사이마다 시뻘건 용암이 득실거리고 있었다. 광석의 푸른빛과 용암의 붉은 빛이 묘하게 어우러지며 땅에서는 무언가 심장을 조여 들게 만드는 기운이 뱀처럼 간지럽게 기어올라왔다. 그것이 바로 동굴 안에 감도는 묘한 기운의 자줏빛이었다. "여긴 정말 이상한 곳이에요. 동굴 같지가 않네요……." 노라크 동굴은 자세히 보면 볼수록 더더욱 동굴 같지 않았다. 앞쪽으로 끊임없이 길이 나 있었고, 중간에는 옆길로 빠지는 곳도 많았다. 시에나의 생각으로 동굴 벽을 흙이 아니고 나무라 가정한다면 마치 아레스 숲과 같은 모습일 것 같았다. “저기, 흥미로운 것이 있어요.” 동굴의 구석구석을 살피던 시에나는 가리온을 지나 동굴의 왼쪽 벽으로 걸어갔다. 시에나가 살짝 이끼를 밟고 서자 광석의 푸른 빛이 시에나의 하얗고 얇은 오클라스 자락을 파르스름하게 물들였다. 광석의 키가 미치지 못하는 높은 벽면에 무늬 같은 것들이 쭉 흘려 새겨져 있었다. “이건……. 무슨 표식 같은데요? ……. 어디선가 본 것 같아요.” 가리온은 시에나의 말소리를 들으면서 주위를 살폈다. 이렇게 자줏빛이 어지럽게 감도는 동굴에 노라크교 잔당들이 남아 있을 확률이 높을 것 같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약간 긴장하고 있는 가리온과 달리 시에나는 이미 동굴의 분위기에 완전히 적응한 듯, 너무나 차분한 모습이었다. “어디 보자……. 예정된 날의……. 그래. 이건 글자예요! 세상에, 전부 피로 새겨져 있어요. ……. 글씨를 파고 피를 덧바른 거 같아요. ……. 이 정도는 한 두 명이 흘린 피가 아닌데……. 노라크 교도들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피로 새긴 것 같군요…….” 가리온은 시에나가 관찰하고 있는 벽을 보고 싶었지만, 자꾸 어지러워서 고개를 돌리기가 힘들었다. 가리온은 시에나와는 달리 동굴 안의 기운에 취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이 문자라면, 노라크들의 기도 비슷한 것 아니겠소? 그것은 나중에 읽어보도록 하고, 우선 이 안을 탐색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당신과 내가 이 곳을 전부 다 돌아다니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오.” 가리온은 현기증을 가까스로 가누며 빨리 이 노라크 동굴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싶은 마음에 한 마디 한 것이었다. 벽을 유심히 살피던 시에나는 가리온을 돌아보더니 약간 미안함 마음이 들었는지 살짝 웃음을 머금었다. 그리고는 다시 뒤돌아 벽에 새겨져 있는 문자를 읽어 나갔다. “이 글자……. 아무래도 인카르 신전에 있는 도서관에서 보았던 것 같아요. 이렇게 피로 새겨진 것은 아니었지만……. 그랜드 폴 이전의 책이었던 것 같은데……. 맞아! 그거야!” 시에나는 놀라는 것 같더니 표정이 일그러져가는 가리온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랜드 폴 이전의 것들은 모두 사라졌지만, 용케도 딱 하나 남은 책이 있었죠. <사육과 조련>이라는 제목의 책이었어요. 끝 부분이 열 장 정도 뜯겨져 있어서, 신전 사람들은 <끝이 없는 책>이라고도 했는데……. 벽에 새겨진 글자는 바로 그 책에 쓰여 있던 글자예요.” 자꾸만 어스름한 기운에 휘둘리는 가리온에게 어떤 글자가 벽에 새겨져 있는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가리온은 점점 더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지만 참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여자 혼자만 이 곳에 남겨둔다면, 남자로서 그리고 기사로서 아무래도 개운치 않은 일이었다. 가리온과 시에나가 노라크 동굴의 벽면에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누트 샤인도 어느새 차가운 통로를 지나 빛이 있는 곳에 다다랐다. 동굴이 울려 두 사람의 목소리가 누트 샤인이 있는 곳까지 들려왔다. “들어보세요! 예정된 날의 축복을 위해, 여기 우리의 피를 적셔 새기니…….” 누트 샤인은 구석에 몸을 숨기면서 시에나가 읽는 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가리온은 벽 앞에 선 시에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시에나는 벽에 새겨져 있는 글자들을 모조리 읽을 태세였다. 가리온은 겨우 정신을 차려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 새겨진 글자는 계속 이어져나가, 이 넓은 노라크 동굴 전체를 뒤덮고 있을 것만 같았다. 멍하게 그 글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가리온은 갑자기 온 몸이 쑤시는 느꼈다. ‘갑자기 왜 이렇게 쑤시지?’ 이상한 예감을 억누르며 가리온은 시에나에게 다시 말했다. “별다를 것 없는 기도문 같은데요.” 하지만 시에나는 계속해서 읽어 나갔다. 글자에 집중하고 있어 가리온이 통증을 느끼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 진정으로 트리에스테를 심판하실 그 분, 본능의 피로, 세상을 바꾸시리라…….” 동굴의 미묘한 기운이 자아내는 현기증과 통증에 휘둘리던 가리온은 벽만 바라보고 있는 시에나의 모습에 부아가 치밀었다. 그러나 시에나는 자신을 치료해 준 인카르의 전령이 아니던가, 가리온은 최대한의 인내심을 발휘하여 권유했다. “이젠 정말 가는 것이 좋겠소.” “아뇨……. 잠시만요……. 이 부분……. 혼돈 속에서 계약된 것처럼, 신과 가까운 자가 폭군의 나무 아래 잠들어 있는, 용사의 무덤에 들 때, 시간의 파괴가 재현될 것이니. 이런, 이것은!” 시에나는 앗! 하며 엉겁결에 한 손으로 입을 막았다. 목소리까지 떨려 나왔다. 가만히 듣고 있던 누트 샤인도 속으로 적잖이 놀라며, 품속의 고서를 매만졌다. '역시……. 노라크들도 알고 있었어. 그렇다면 틀림없이 여기에 그 물건이 있겠군……. 그런데……. 저들은 모르고 온 것인가? 조금만 더 지켜보아야겠어.' 가리온은 참을 만큼 참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노라크 교도들과 싸워보기도 전에 마법사인 시에나가 기껏 벽에 새겨져 있는 글자에 놀라버린다는 것에도 문제가 있어 보였다. 게다가 현기증과 통증을 견뎌내기도 더 이상은 힘들었다. “이게 그렇게 중요한 거요? 그냥 자기들끼리 믿는가 보죠. 그런 건 신경 그만 쓰고, 이젠 출발합시다. 노라크 교도들의 잔당들이 어디선가 우리를 노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않소!”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시에나를 직접 붙잡고 나서려던 가리온은 벽 가까이로 걸음을 옮겼다. 벽 쪽으로 간 가리온은 시에나의 등 바로 뒤에서 노라크들이 새겨 놓은 문자를 자세히 보게 되었다. 이미 오래 전에 까맣게 굳어져 버린 혈흔이 문자가 새겨진 곳을 넘쳐 벽에도 말라붙어 있었다. 가리온은 자기도 모르게 그 글자에 손이 갔다. 무언가가 가리온 자신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시에나는 옆으로 다가온 가리온을 잠시 바라보았지만, 가리온이 문자에 관심을 두는 듯하자 말을 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라크교가 현재 트리에스테 대륙의 정교인 인카르에 대항하여 생긴 밀교 집단인줄로만 알고 있죠. 인카르에 있는 신관들 중에서도 그 정도로만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노라크 교도들의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그게 아니라……." 시에나는 벽면에 새겨진 글자를 두려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조심스러운 행동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문자만 들여다보는 시에나를 탓하던 가리온도 어떤 느낌이 전해졌는지 그녀가 하는 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었다. 툭-. 가리온과 시에나는 거의 동시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숲처럼 넓은 동굴 내부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동굴의 천정에서 푸르스름한 모래가 부슬부슬 떨어지는가 싶더니,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닥이……. 이상해요!" 시에나는 얼른 벽에서 떨어져 가리온 곁으로 섰다. 바닥이 흔들려 갈라지고 있었다. 가리온은 다리를 넉넉하게 벌리고 서서, 중심을 잡았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겠소?" "마법으로 모든 걸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아마도……." 땅이 울리면서 시에나의 몸도 같이 흔들렸다. 시에나는 자기도 모르게 가리온의 팔을 꼭 붙잡았다. 뜨거운 가리온의 근육에 놀란 시에나는 잡았던 팔을 놓을까도 했지만, 그렇게 하면 더 어색해질 것 같았다. 시에나는 발개진 얼굴을 돌려 위를 바라다보았다. 푸른 가루가 떨어지는 노라크 동굴의 높은 천정에 굵은 밧줄 같은 것이 뒤엉켜 있었다. "저기 봐요. 세상에. 저게 다 뭐죠? 저건……. 꼭……. 나무뿌리처럼 생겼어요. 아까는 저런 게 보이지 않았었는데……." "종유석에 붙어 있던 것들이 떨어지면서 보이게 된 것인지도 모르죠. 저게 나무뿌리라면, 다행이겠군요. 적어도 천정이 금방 무너지는 일은 없겠소." "종유석이 떨어지면 어쩌죠?" "그렇게 크게 자란 것들이 아니라 비수처럼 꽂히지는 않을 것이오." 가리온의 말처럼 천정에서는 계속 푸른 모래가 약간씩 떨어졌지만, 종유석이 무섭게 떨어지거나 천정이 무너지지는 않았다. 바닥은 금새 흔들림을 멈추는 것 같더니, 조금 전의 진동으로 생긴 틈에서 붉은 것이 조금씩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놀란 시에나가 소리쳤다. "용암이에요!" 용암의 뜨거운 입김은 넓은 노라크 동굴을 어느새 가득 채웠다. 가리온의 몸에서는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시에나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말을 이었다. "진정해야 해요……. 아직, 아직은 약하게 나오고 있으니까……. 조금 있으면 용암이 솟구쳐 나올 거예요. 용암이란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러니까……. 지금 당장 여기서 나가야 해요!" 시에나는 가리온의 팔을 꽉 잡았다. 가리온은 시에나를 돌아다보았다. 하얗던 시에나의 얼굴에는 푸른색 가루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고, 두 눈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그래야겠군요." 가리온은 서서히 흘러나오는 용암을 뒤로 하고 아까 들어왔던 통로로 향했다. 시에나는 여전히 가리온의 팔을 잡은 채, 가리온의 뒤에 바짝 붙어 걸음을 옮겼다. 가리온과 시에나가 통로 쪽으로 점점 다가오자, 통로 끝 구석에 숨어 있던 누트 샤인은 조바심이 났다. 저 두 사람이 이쪽으로 오면 분명히 마주치게 될 것이었다. 누트 샤인은 싸움은 피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저들은 어려 보였지만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 미지수였고, 곧 터져 나올 것 같은 용암이 눈앞에 있었다. 누트 샤인에게는 매우 불리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누트 샤인이 지금부터 입구까지 기어간다 하더라도 두 사람 눈에 뜨일 것은 뻔했다. 통로 안에는 특별히 몸을 숨길만한 곳도 없었다. 발각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더욱이 누트 샤인은 신체 특성상 걸음이 느릴 수밖에 없었다. 특히, 통로 안이 미끄러워 입구까지 올라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었다. 누트 샤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품속에서 낡은 책을 꺼내 펼쳤다. 아까 무덤 앞에서 읽었던 구문이 있는 곳이었다. 그가 펼친 책에는 시에나가 동굴 벽에 읽던 글자와 같은 모양의 문자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래. 그래. 시간을 벌어야겠어……. 저들을 처리하는 것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마음을 정한 누트 샤인은 책을 도로 품 안에 집어넣고,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촉수를 다시 감추고, 망토 자락을 굳게 여민 뒤, 통로 끝으로 올라가 살짝 얼굴을 내밀었다. 가리온과 시에나는 용암에서 내뿜는 열기를 피하여 누트 샤인이 있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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