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ieste_대륙의 전쟁 - 7장. Rescue. 구출
| 21.02.03 12:00 | 조회수: 1,877


그들은 가리온의 적이 아니었다.

가리온을 아는 사람은 많았다. 비단 인카르 교단의 사람들뿐이 아니라 트리에스테의 저변이나 음지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심지어, 가리온 본인보다도 그에 대해 더 잘 알았다. 그 이유는 가리온이 검성 슈마트라 초이의 아들인데다가 인카르의 청기사 단장이며, 알로켄의 피를 가진 칼리지오 밧슈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이유로 가리온의 이름을 한 번쯤이라도 들어보고 관심을 가져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 카시미르 산맥의 골짜기, 헬리시타의 2시 방향, 서늘한 바람이 불지만 약간은 햇살이 따가운 곳에 아이언 테라클의 군대를 막은 자들은 바로 마지막 이유. 가리온의 피 때문에 나타난 자들이었다.

백기사단의 하얀 갑옷 사이로 검은 로브를 입은 무리가 드문드문 들어섰다. 그들은 얼굴을 잔뜩 가렸는데도 작은 눈에서 광기가 뿜어져 나왔다. 살짝 드러난 손과 목의 피부는 짐승의 가죽처럼 검게 반질거리고 두터웠다.

“킬킬킬. 저기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가 있군!”

대표로 보이는, 해골 모양의 목걸이를 길게 늘어뜨린 자가 나서서 외쳤다.

“누구냐!”

잔바크 그레이는 그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들이 트리에스테 대륙에 전면으로 등장할 때 그는 제노아의 풋내기 기사였다. 잔바크 그레이뿐이 아니었다. 아이언 테라클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전쟁을 치를 때 아이언 테라클은 자덴에서 황금을 모으고 있었다.

“우리는 노라크 교도다!”

“어…. 어떻게…!”

아이언 테라클을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노라크 교도는 슈마트라 초이가 전부 토벌한 줄로만 알고 있었다. 물론, 남은 잔당들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군대가 될 정도로 큰 줄은 전혀 몰랐다.

“어리석은 조디악. 우리가 멸종한 줄 알았구나.”

“어째서. 이곳에!”

“너희가 가진 것들에 관심이 많아서 왔도다.”

“…!”

아이언 테라클은 단번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챘다.

‘슈마트라 초이와 듀스 마블!’

아이언 테라클이 굵은 눈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가 토벌한 노라크 교도들, 그들은 둘에게 복수를 하려고 앙심을 품고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가리온의 일행에게는 관심이 없는 것인가?’

사실 아이언 테라클은 가리온을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중간자라고 하지만, 아이언 테라클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잔바크 그레이에게 물었다.

“가리온이 칼리지오 밧슈의 후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자는 얼마나 되지?”

잔바크 그레이는 얼른 델카도르를 떠올렸다. 그 말고는 다른 추격자가 없었다. 잔바크 그레이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만큼 상황이 긴장되어 있기도 했다.

“로아의 델카도르 세력 말고는 추격자가 없었습니다. 사실 가리온이 중간자라는 것도 엘타까지 쫓아 온 델카도르에게 들은 것입니다.”

“그래?”

아이언 테라클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작은 목소리로 지시했다.

“저들이 노리는 것은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의 시신인 것 같구나. 비록 죽은 몸뚱아리지만 우리는 그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헬리시타로 돌아가면 당장에는 저 둘의 시체가 우리를 유명하게 만들어 줄 것이야. 그러니 정예 병사들을 시체에 붙여라.”

“네.”

잔바크 그레이가 움직이자, 아이언 테라클은 노라크 교도를 향해 소리쳤다.

“개념 없는 밀교도가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꼴이라니! 나 인카르의 조디악, 아이언 테라클을 얼마나 우습게 보았길래 나설 자리를 구별하지 못하느냐! 겁을 상실했도다!”

아이언 테라클과 인카르 교단의 군대는 곧 벌어질 전투를 앞두고 마음껏 조롱했다.

“황금만 밝히는 대장장이가 많이도 컸네! 더는 못 봐주겠구나!”

백기사단의 흰 물결과 노라크 교도들의 검은 물결 사이에 잘 드러나지 않던 황량한 차림의 사람이 외쳤다. 그는 오염체의 탈을 머리에 뒤집어 쓴데다가 옷이 골짜기의 흙색과 비슷해서 더 눈에 띄지 않았다. 그 뒤에는 비슷한 옷을 입은 일련의 무리들이 있었는데 직접 만든 것처럼 보이는 조악한 무기들을 들었다. 아이언 테라클은 저들은 또 무언가 싶었다. “우리는 반 인카르! 황색당이다!”

아이언 테라클은 배가 아팠다. 너무 웃어 장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미치겠구나! 황색당이라고? 트리에스테 대륙에 쓸모 없는 게 이렇게 많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자, 더 없느냐? 조무래기들이 더 없느냔 말이다! 오늘 여기서 모두 몰살시켜 줄 테니 있으면 또 나와봐라!”

아이언 테라클은 골짜기를 두루두루 보며 호통했다. 백기사단이건, 노라크 교도건, 황색당이건 그의 눈에는 전부 조잡한 것들이었다. 눈을 찡그리며 아이언 테라클은 머릿수 채워 싸우는 게 전쟁이 아님을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벌레들.”

아이언 테라클의 비웃음은 교만하게 보였다. 그러나 잊어서는 안될 사실이 있었다. 인카르 교단의 군대는 트리에스테 대륙에서 제일 가는 정예 병사이다. 푸른 용이 싸우는 것처럼 보이는 군대는 아이언 테라클이 자랑할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다. 백기사단, 노라크 교도, 그리고 황색당은 그 사실을 당연히 알았다.

“오백 명은 되겠군. 우리보다 배나 많다니. 그러나 희생은 각오하고 왔습니다. 말했듯이 우리의 목표는 조디악인 아이언 테라클입니다. 인카르 교단의 군대는 당신들이 지키려는 일행보다 아이언 테라클을 먼저 지켜야 할 것입니다.”

황색당의 대표였다.

황색당의 대표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인카르 교단의 대표, 조디악 아이언 테라클이었다. 황색당은 반 인카르 교단을 주장하는 세력으로서 아이언 테라클을 위협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이번의 행동이 그들 세력에게는 큰 업적이 될 것이었다.

“쉽지 않겠지만 부탁하겠소. 우리도 인카르 교단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오. 무엇보다 청기사단이 백기사단을 쳐내고 인카르 교단과 손잡았다는 사실에 우리는 분노하고 있었소.”

바론은 황색당의 대표에게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가리온 초이는 백기사단의 사람이오. 청기사단에 몰래 잠입해 활동한 것이지. 염탐꾼이었단 말이오. 그러나 간사한 아이언 테라클이 눈치를 채고 저들을 모두 잡아버렸소. 헬리시타에 도착하면 잔인한 인카르 교단이 사죄의식을 행할 것이오. 그래서 이렇게 각지에 흩어져 있는 백기사단을 한 자리에 모아 온 것이오!”

“사죄의식! 그에 대해 들은 적이 있습니다. 루앙 광장에서 벌어졌다지요? 아주 잔인하기 짝이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사죄의식 끝에는 검은 회오리가 쳐서, 마치 그랜드 폴이 다시 일어난 것 같았다고!”

“그게 다 듀스 마블 때문이오. 그가 흑마법을 쓴다는 것을 백기사단에서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 그런데 혹시 아시오?”

“…?”

“듀스 마블과 아이언 테라클은 공통점이 있소. 두 사람 다 아모르 쥬디어스에게 가르침을 받았지. 백기사단을 복수의 빙곡에 가두어버린 아모르 쥬디어스에게.”

“설마, 그렇다면 아이언 테라클도 흑마법을?”

황색당의 대표는 이런 이야기를 처음 듣는 듯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진실은 알수록 놀라운 법이라오.”

“흠…. 역시….”

황색당 대표는 노라크 교도들 쪽을 힐끗 보았다.

“그런데….”

“키키.”

노라크 교도의 대표는 실실 웃었다.

“우리가 노리는 건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의 시체뿐이다.”

“지금은 서로 돕지만. 다음 번에 만나면. 너희들은 황색당의 적이다.”

“크크크. 그래. 그러자.”

사실 황색당은 백기사단과 노라크 교도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몰랐다. 바론은 가리온이라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아이언 테라클을 친다고 말했고, 노라크 교도는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에게 복수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반 인카르, 황색당은 그것을 그대로 믿었다. 그대로 믿는 편이 좋았다. 황색당도 무언가 대륙 전체에 주목을 끌만한 일을 벌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언 테라클은 듀스 마블 이래로 거물 중에서도 거물이 되었다. 황색당은 아이언 테라클을 치면 자신들도 트리에스테 대륙에서 유명해질 것이라고 판단했다. 조디악과 싸우는 사람은 흔치 않았으니까.

“그러면.”

황색당은 슬슬 앞으로 튀어 나왔다. 절벽을 타고 내려갈 기세였다.

“잘 해 봅시다.”

바론은 고개를 끄덕이고, 백기사단을 향해 외쳤다.

“형제들! 가리온의 일행 여섯을 모두를 구출하라!”

“우와아아!”

백기사단과 황색당이 앞을 다투며 아이언 테라클의 군대를 향해 돌진했다. 백기사단은 가리온과 일행을 안전하게 구출하기 위해 다소 침착하고 냉정을 유지하려는 표정이었고, 황색당은 적과의 전투에 긴장되고 흥분한 모습이었다.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에게 죽은 우리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복수를 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지만, 전능한 신 카론님을 너무도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

노라크 교도의 대표가 차분히 일렀다.

“우리는 되도록 나서지 않는다. 가리온을 구출하면 백기사단을 따라 간다. 진리를 모르는 인간들의 싸움에는 관여하지 말자. 우리는 이미 많은 희생을 보았다.”

노라크 교도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색당은 행색이 초라해서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다. 그야말로 쉽게 보였다. 그러나 그들은 질기고 질겼다. 아이언 테라클을 호위하던 병사들이 칼로 등을 찔러도 황색당원들은 눈 한 번 깜빡 않고 매섭게 달려들었다. 아니, 오로지 아이언 테라클만 노렸다. 몸뚱이가 더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 같으면 들고 있던 무기를 아이언 테라클 쪽으로라도 던지거나 마법으로 자폭해 피해를 입혔다. 몰려드는 황색당과 지켜주는 인카르의 군대, 그 중앙에서 말 머리를 이리저리 끄는 아이언 테라클은 매우 당혹스러웠다. 잃을 것이 없다는 표정으로 거칠게 달려드는 그들이 자신을 목표로 삼으리라고는 생각 못했기 때문이다.

잔바크 그레이도 당황스러웠다.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자신이 직접 정예병을 이끌고 대기했는데 정작 공격하는 이가 없었다. 백기사단이 움직이는 방향을 보고서야 잔바크 그레이는 그들의 목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녀석들! 가리온을 노리고 왔어!’

잔바크 그레이는 아이언 테라클 쪽을 보며 이를 물었다.

“단장님! 어떻게 할까요? 이곳을 지킬까요? 저곳을 도우러 갈까요?”

황색당과 백기사단이 목표물을 확실하게 나누어 아이언 테라클의 군대를 분산시키자, 병사들은 혼란스러워 했다.

“오랜만이구나! 배신자!”

“…!”

바론이었다. 잔바크 그레이는 크레스포로 가는 길에 복수의 빙곡에서 바론을 만난 적이 있었다.

“내가 어째서 배신자냐!”

“크루어를 들고 있군. 솔직히 말해봐. 반짝거리는 것이 탐났다고. 아이언 테라클처럼 말이야.”

앤드류는 잔바크 그레이가 들고 있는 은 검을 가리키며 조소했다. 잔바크 그레이는 당황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너희들은 어째서 인카르 교단에 대항하는 것이냐! 어리석은 짓임을 모르느냐!”

“전우를 배신하고 크루어를 집어들 때부터 네가 어떤 놈인지 알았다만, 이렇게 까지 우매할 줄이야.”

“닥쳐라!”

잔바크 그레이는 바론과 앤드류를 향해 달려 들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잔바크 그레이는 어린 아기에 불과했다. 검이 두 번, 세 번 부딪히면서 잔바크 그레이는 그것을 절실히 느꼈다. 앤드류가 검을 휘두르는 번개 같은 속도를 맞추기에 잔바크 그레이는 너무도 숨이 찼다. 힘이라면 자신 있었지만, 바론은 잔바크 그레이의 검이 기어오를 틈도 주지 않고 사정없이 짓눌렀다. 잔바크 그레이는 떨어져 숨을 고를 시간이 필요해졌다.

“제길!”

“적은 애송이다! 우습게 봐도 된다. 가볍게 넘겨주자.”

“웃기지 마라! 숫자로는 우리가 우세하다!”

“과연 그럴까?”

바론의 말에 잔바크 그레이가 눈을 부라리는 순간, 화염이 터졌다. 골짜기 위에서 노라크 교도들이 부린 마법이었다. 화염이 터진 자리에서 수많은 스켈레톤들이 빽빽하게 일어섰다.

“어때? 이제는 우리가 조금 더 많지 않을까?”

“…!”

“애송이. 전투는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바론의 검이 붉은 꽃을 휘날리며 다가오자 겁먹은 잔바크 그레이는 자기 대신 다른 데카론들을 앞으로 내보냈다.

“이 자가 백기사단의 우두머리다! 이 자만 죽이면 백기사단은 흩어질 것이다!”

순진한 아이언 테라클의 군대는 앞다투어 목을 들이밀었고 모두 한 송이 붉은 꽃이 되었다. 바론은 깔끔하게 마무리하며 앤드류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가리온을 데리고 가도 되겠어.”

“좋아.”

“안돼!”

“넌 내게 집중해라!”

바론이 몰려드는 데카론들과 잔바크 그레이를 검 하나로 감당하는 순간, 앤드류는 속도를 높여 가리온에게로 향했다. 파그노와 칸이 가리온 일행을 절벽으로 몰아놓고 있었다.

“가까이 오지마!”

파그노가 외쳤지만, 소용 없는 일이었다. 앞에서 보여준 광경에 수십 명은 족히 넋을 잃은 상태였다. 앤드류는 여유롭게 쭉 둘러보고 캄비라 바투를 지정했다.

“그래. 너부터.”

쿠리오는 앤드류가 무슨 일을 벌이려는지 알아챘다.

“안돼.”

“너는 주인을 버렸구나.”

쿠리오는 앤드류와 캄비라 바투를 번갈아 보다가 칼을 앞으로 들었다. 그러나 앤드류는 쿠리오를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쿠리오가 벌벌 떨기 때문이었다.

“오지마!”

쿠리오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 앤드류는 웃으며 다가갔다. 그리고 거침없이 백기사단의 붉은 꽃을 그렸다. 조각난 갑옷이 바닥을 굴렀다.

“호오!”

앤드류는 재미있는 표정이었다.

“쿠리오는 건드리지 말아라.”

벌벌 떨며 칼을 들고 있는 쿠리오 앞을 막아선 것은 캄비라 바투였다. 흩어진 갑옷 조각은 그의 것이었다. 캄비라 바투의 가슴 문양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가리온과 너희 동료들을 구하러 왔다.”

캄비라 바투는 앤드류의 말을 듣고 쭉 둘러 보았다.

“나도 돕겠다.”

“부족 출신이라도, 지도자는 틀리군.”

캄비라 바투는 말없이 아이언 테라클의 군대를 헤집기 시작했다. 쿠리오는 캄비라 바투를 막을 수가 없었다. 한때 그를 따랐기 때문이었다. 파그노와 칸 또한, 그래도 예전에 동료였던 캄비라 바투와 대적하고 싶지는 않았다. 멀리 있는 아이언 테라클이나 잔바크 그레이의 전투 상황이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오빠…. 어쩌죠?”

“…. 아이언 테라클님이 원하는 건, 듀스 마블과 슈마트라 초이니까. 괜찮을 거야. …. 괜찮을 거야. 아마도.”

앤드류는 캄비라 바투와 함께 손쉽게 에바와 룸바르트 그리고 가리온을 구출할 수 있었다.

“이거 일이 너무 쉽게 진행되는데! 바론! 이 쪽은 끝났어! 자! 백기사단은 지금부터 즉시 퇴각한다!”

서둘러 바론과 백기사단을 부른 앤드류는 여전히 모든 것에 흥미를 잃은 가리온에게 말했다.

“우리와 함께 가야 할 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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