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estament - 새로운 약속 - 5장. Value. 시에나의 가치
| 21.01.13 12:00 | 조회수: 1,028


캄비라 바투는 시에나를 안고 조금 더 외진 곳으로 갔다.

바기족 전사들은 왜 이곳까지 왔냐고 성화였지만, 시에나의 몸뚱이를 안고 더 멀리 간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바기족으로서는 인간들에게 발각되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 또한, 사실 바기족들에게로, 자덴으로 돌아가도 마땅히 치료할 의사나, 약물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캄비라 바투는 자덴이나 바기족들보다, 인간인 시에나에게는 트리에스테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인 헬리시타의 좋은 의사가 좋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다.

“쿠리오.”

캄비라 바투가 사뭇 진지한 눈빛과 말투로 쿠리오를 부르자 바기족 전사들은 뒤로 물러났다. 쿠리오만이 인간인 의사를 부르러 갈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네?”

쿠리오는 정색을 하고 바라보는 캄비라 바투의 시선을 받아넘기기가 힘들었지만, 지금은 눈을 피해도 되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캄비라 바투의 눈빛을 진지하게 응수하려고 눈에 힘을 주고자 노력했다.

부담스러움을 넘어서 위협적인 기운이 퍼지는 캄비라 바투는 쿠리오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난 이 여자를 살리고 싶다. 의사를 구해와라.”

쿠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숨을 걸고 행동해야 할 것이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지?”

쿠리오는 두려운 눈빛을 보였다.

“네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자덴에 남은 모든 인간들을 죽이겠다. 그 다음 자덴의 전사들이 트리에스테 대륙을 이 잡듯이 뒤져서 너를 찾아낼 것이다.”

쿠리오는 자꾸 나오는 침을 삼키지도 못할 정도로 떨었다. 캄비라 바투의 위압감은 실로 굉장한 것이었다.

“가라.”

쿠리오는 뒷걸음질치다가 뒤돌아 뛰었다.

“괜찮을까요? 인간을 믿는다는 게….”

바기족 전사들이 헐레벌떡 뛰어가는 쿠리오의 등을 보며 말했다.

캄비라 바투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쿠리오를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시에나를 고칠만한 의사가 있을 지가 더욱 걱정스러웠다.

“시에나…….”

캄비라 바투는 시에나의 가녀린 얼굴선을 훑어 내렸다.

바기족이 아직 자덴 성을 점령하기 전, 시에나는 인카르의 전령으로서 바기족 진영을 찾았다.

시에나의 눈부신 모습도 충격적이었지만, 전령으로서 전한 이야기는 더욱 놀랍고 소름 끼치는, 뒤로 넘어질 만한 성질의 것이었다.

누트 샤인과 바기족의 성인식에 관련한 진실, 그리고 듀스 마블.

캄비라 바투는 시에나에게 한 눈에 마음을 빼앗겨버렸지만, 그는 적이었다.

그런데, 그 여린 사람이 눈앞에, 그것도 만신창이가 되어서 나타나다니.

캄비라 바투는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날개를 다친 그리폰이 캄비라 바투에게 날아들었던 것처럼, 시에나도 상처를 입은 채로 캄비라 바투와 재회했다. 그렇다면 그리폰이 캄비라 바투의 승리를 위해 날아올랐던 것처럼, 시에나 역시 캄비라 바투의 마음을 받아줄 것이다. 그것은 몹시도 기대되는 일이었다.

캄비라 바투는 서둘러 시에나를 깨워내고 싶었다.

사랑에 빠진 캄비라 바투에게 시에나는 헬리시타나 트리에스테 대륙, 아니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하고 여린 파랑새였다.

쿠리오는 헐레벌떡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어갔다. 인간의 모습이 나타날 때까지 계속해서 뛰었다.

“헉. 헉.”

사람을 보았을 때 쿠리오는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 살가운 사람 냄새,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 순간 쿠리오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쿠리오는 이상해 보일 정도로 몸 여기저기를 킁킁댔다. 고약한 냄새가 온 몸에서 진동하는 것 같았다.

‘바기족, 바기족 냄새가.’

쿠리오는 갑자기 홀로 떨어진 것이 두려워져, 몸을 움츠렸다.

‘저 사람들이 내가 바기족과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면 나를 해치지 않을까? 날 바기족처럼 보지 않을까?’

모든 것이 의심스럽게 보였다.

‘저기 걷고 있는 사람은 진짜 사람일까? 인간의 모습을 한 이계의 생명체이거나, 혹은 사람의 탈을 쓴 바기족은 아닐까? 사실은, 캄비라 바투가 나를 시험하고 있는 것일까?’

쿠리오는 머리가 어지러웠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난 모습의 캄비라 바투가 눈에 아른거렸다.

‘내가 꼭 시에나를 구할 의사를 데리고.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대로 도망친다면…. 이대로 도망쳐버리면….’

그러나 쿠리오는 캄비라 바투가 자신이 그냥 도망치도록 두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캄비라 바투의 눈빛은 반드시 쿠리오를 찾아내리라는 사실을 담고 있었다.

쿠리오는 살기 위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내야 했다.

‘캄비라 바투보다 더 강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쿠리오의 머리 속에 문득 찰나의 생각이 스쳤다.

잘하면, 시에나 오틴을 이용해 자신의 목숨은 물론, 자덴까지 되찾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그 사이 루앙 광장이 벌써 코앞이었다.

“룸바르트! 데카론에 참여하다니, 도대체 무슨 생각인가?”

“알 것 없어요.”

데카론의 여정을 독려하는 축제가 한바탕 열린 루앙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방금 전 아이언 테라클을 따라가 데카론 명단에 자신의 이름도 적어 넣은 룸바르트는 헤이치 페드론에게 떠나겠다고 말했다.

“이봐! 그 자의 아들이 이번 단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는가?”

사람들은 환희에 들떠 있어서 헤이치 페드론이 크게 소리쳐도, 사람들 사이를 지나가는 룸바르트가 몸에 부딪혀도 별 신경 쓰지 않았다.

“잘 알고 있어요. 그곳으로 들어갈 거구요.”

“뭐라고? 제 정신이야?”

헤이치 페드론은 사람들을 거세게 밀쳤다. 몇몇 사람들이 그제야 이상하다는 듯 돌아보았지만, 헤이치 페드론은 룸바르트의 팔을 덥석 잡았다.

“자네, 나와 연구를 계속하기로 한 약속은 잊었나? 그 밑으로 들어가서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거야?”

“놓으시죠.”

“도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 거야?”

“이봐요. 의사 양반. 내가 무슨 일을 꾸미든 당신이 무슨 상관이지? 당신이 내 아버지라도 돼?”

“룸바르트! 그게 할 소린가!”

“그 자가 살아 있어요. 아직도 살아 있답니다! 목숨 부지하고 살아 있다구요!”

헤이치 페드론은 룸바르트의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저기! 잠시만요!”

일순간에 모든 공기가 쿠리오에게 쏟아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쿠리오는 가슴이 탁 막히는 것 같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자기도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의사 선생님?”

쿠리오가 대뜸 물었다.

헤이치 페드론은 영문도 모르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 저, 환자가 있습니다!”

쿠리오는 대뜸 달려가 붙잡았다. 싸움에 더 휘말리기 전에 끄집어 낼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정말 의사 선생님이시죠?”

헤이치 페드론은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아! 다행입니다! 정말, 정말 다행입니다! 아! 헬리온의 가호를! 의사 선생님을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중요한 환자가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중요한.”

쿠리오는 막무가내로 헤이치 페드론을 잡아 끌었다.

“선생님, 같이 가 주십시오. 환자에 대해서는 가면서 차차.”

헤이치 페드론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룸바르트를 잊지 않았다.

“룸바르트?”

“의사 양반. 가서 생명이나 하나 살려요. 난 여기서 새 생명을 찾을 테니까.”

룸바르트는 조소를 띄우며 말했지만 헤이치 페드론은 웃음도 나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하던 것들 마저….”

쿠리오는 사방으로 고개를 숙여가며 헤이치 페드론을 끌었다. 헤이치 페드론은 어안이 벙벙한 듯 끌려가다가 눈을 바로 떴다.

“중태인가?”

“네! 그러니까 얼른 가셔야 합니다!”

헤이치 페드론은 쿠리오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덥석 룸바르트를 잡았다.

“조수가 필요하네!”

룸바르트는 헤이치 페드론에게 잡히자 거세게 뿌리쳤다. 그러나 조수라는 말을 들은 쿠리오는 룸바르트까지 끌고 가기 시작했다.

“장난해요? 난 데카론 때문에 출발해야 해요! 돌아가야 한다구요!”

룸바르트는 계속 성질을 부렸다.

“차라리 잘 된 거야.”

“뭐요?”

“자네도 정착해야지. 복수 같은 것은 다 잊어버리고 새 출발 해.”

“돌아버리겠군.”

“저기….”

쿠리오는 헤이치 페드론과 룸바르트를 이끌며 조심스레 대화에 끼어들었다.

“환자에 대해서….”

“쳇, 제길. 그냥 죽어버리면 모두 편하잖아. 안 그래?”

“그렇지 않습니다!”

화가 난 쿠리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에나를 살리기만 하면 자덴에 또 다시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쿠리오였다.

“정말 중요한 분입니다!”

광장에서 끌려 나와 화가 덜 풀린 룸바르트는 쿠리오를 같이 노려보았다. 때문에 헤이치 페드론이 다시 중재를 했다.

“됐네. 그래. 환자에 대해 이야기 해 보게.”

쿠리오는 룸바르트를 한 번 더 노려보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주 심각한 상태입니다. 한쪽 어깨는 가슴팍까지 날카로운 것에 움푹 패인 듯 하고, 숨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뭐야, 그게 다야?”

룸바르트는 깐죽거렸다.

“피부색이 검고 노랗습니다. 뭐, 노랗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할 수도 있겠군요.”

“눈동자는 어떻든가?”

“아! 미처 거기 까지는!”

“머저리. 살릴 마음이 있기나 한 거야? 헤이치. 그만 돌아가자구요. 이미 죽은 거 같은데.”

“죽었어도 살려야 합니다!”

이번에는 헤이치 페드론도 놀랐다.

“그 분이, 우리를. 우리를.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룸바르트는 낯선 사내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호오. 구세주인가?”

“여러분들도 아실 겁니다. 아주 대단한 분입니다. 그 분은 인카르 교단의 사제이며 전령이죠. 여러분들도 놀라실 것입니다. 제가 살리려 하는 분은 바로, 시에나 오틴님입니다!”

쿠리오는 불행히도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뭐?”

룸바르트의 눈이 커졌다. 쿠리오는 으스댔다.

“시에나 오틴님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그분은 자덴을 구하러 오셨었습니다. 하지만 세지타족이 우리를 버리고 바기족들이 쳐들어 왔죠. 전 인카르 교단에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청하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쿠리오는 슬며시 단도를 찬 다리를 매만졌다. 결심은 아직 유효한 것 같았다.

“하지만 인카르 교단에서는 아무도 제 말을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무리도 아니죠. 이런 차림으로 어떻게…. 그렇지만, 그렇지만, 시에나님을 도와드리면, 그 분이 살아나시면! 인카르 교단의 도움을 받아서. 바기족은 틀림없이 자덴에서 도망치게 될 겁니다!”

쿠리오는 뿌듯해 했지만, 주위의 반응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푸, 푸하하하하.”

룸바르트는 실컷 웃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하하하하하.”

룸바르트는 팔꿈치로 헤이치 페드론을 툭툭 쳤다.

“어쩔 거예요?”

헤이치 페드론은 눈을 내리깔며 우뚝 서버렸다.

“또 살려 줄 거예요? 이번에는 누가 대신 희생 되려나…. 설마…. 나? 푸하하하하. 아, 나는 우리 의사 선생님을 동정하지 않을 수가 없어. 어쩌면 그렇게 나랑 처지가 비슷할까!”

룸바르트는 하나도 재미있지 않은 농을 연신 지껄였다.

전에도 헤이치 페드론이 시에나를 치료해 준 적이 있었다. 헤이치 페드론이 시에나를 치료하고 있는 사이에, 가장 절친했던 요쉬마 디아메키가 죽었다. 헤이치 페드론에게 시에나는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쿠리오가 이런 역사를 알 리가 없었다.

헤이치 페드론은 한숨을 한 번 쉬고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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