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estament - 새로운 약속 - 11장. Mistrust. 의심과 자극
| 21.01.13 12:00 | 조회수: 945


로아성 한가운데서, 누군가 하프를 켜고 있었다. 깃털을 꽂은 모자가 그럴싸한 음유시인처럼 보였다. 그는 모자를 푹 눌러써서 눈은 거의 가렸고 앙상한 손이 하프를 오르락내리락했다.

"하프가 나와 그대를 인도할 것이오. 비탄한 슬픔이 있는 곳, 트리에스테 대륙 데카론의 영웅들에게로."

구슬픈 노래는 델카도르를 만나고 나온 가리온의 일행들에게로까지 울려 퍼졌다.

"우리말고도 데카론의 무리가 온 건가?"

"그렇다면 델카도르는 왜 그렇게 냉정했을까요?"

"흠, 흠. 타마라 때문이라고 봅니다."

잔바크 그레이의 말에 에바가 반문하자 파그노가 아는 척을 했다.

타마라는 파그노의 말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룸바르트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주제를 모르는 혀가 제일 빠른 법이지."

“뭐요?”

파그노는 발끈 화를 내었고, 헤이치 페드론은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요드들이 한 몫 했을 걸세. 그들은 검은 두건을 쓰고 있지만 총명함으로 빛나지. 영리한 그들이 인카르의 소식을 재빨리 전했을 거야."

“요드?”

에바가 되묻자 헤이치 페드론은 더 장황한 설명을 했다.

“말했듯이 요드들은 주로 검정색 망토를 두르고 세계에 관한 신비를 풀고자 언제든 어디든 여행을 다니지. 저들은 또 트리에스테 대륙을 여행하면서 그들이 가진 마법으로 여행자들을 돕기도 한다네. 진정 멋지지 않은가!”

그 말을 들은 파그노는 입이 간지러웠다.

"그러나 요드들은 금지된 마법을 한다던데. 그럼 트리에스테 대륙이 오히려 위험해지는 것 아니오? 잘못해서 악마라도 불러내면 어쩌려고."

"금지된 마법이라면 소환술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럼 정말 큰일인데."

파그노에 이어 칸도 끼어들었다.

"그게 뭐 어때서?"

룸바르트가 파그노를 노려보았다.

"원래는 금지된 마법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네. 소환술은 이미 합법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네."

헤이치 페드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요드들이 거리를 활보하게 된 것 자체가 수용된 것이라 할 수 있지. 소환술은 하나의 대안이 될 거야. 카론에게 맞서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힘이 필요하지만 인간의 힘에는 한계라는 것이 있네. 소환수들은 강력한 힘을 인간에게 부여할 거야. 설사 그것이 악마의 힘이라도 우리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네."

헤이치 페드론이 조목조목 말하고 나자, 모두가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설마 당신…?”

파그노는 손가락으로 헤이치 페드론을 가리켰다.

“헤이치 페드론님은 절대로 소환술 같은 것을 할 분이 아니에요! 의심하지 마세요!”

시리엘 아즈는 말을 마치고 룸바르트를 보았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은 아닌지 확인을 받기 위한 몸짓 같았다.

“그렇죠?”

하지만 시리엘 아즈의 걱정 그대로, 말은 헤이치 페드론을 더욱 의심스러워 보이게 만들었다. 모두의 눈은 정지해 버렸고 대화도 끊겼다. 시리엘 아즈의 얼굴은 수수한 옷차림 뒤로 숨을 것처럼 벌개졌다.

마침내 룸바르트가 히죽 웃으며 한 마디 던졌다.

“소환술사가 두려운가?”

룸바르트는 답변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등을 돌려 주점을 향해 걸어갔다.

다른 사람들도 말없이 룸바르트를 따라 주점으로 향했다.

더 이상의 의심은 서로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다.

가리온의 일행에게는 쉴 곳이 필요했다.

헬리시타를 떠난 후, 계속 딱딱한 돌 바닥에서 잠을 청해 왔었다. 빗물이 떨어질 때면, 그대로 맞았다. 산맥을 넘고 숲과 초원을 가로질러 오느라고 잠자리나 음식, 모두 형편 없었다.

가리온은 빠듯하게 일행을 이끌었고 불평이나, 낙오자 없이 로아성까지 온 것이 오히려 대단한 것이었다.

“역시 사람은 이런 데서 쉬어야지.”

룸바르트는 기지개를 켜며 여유롭게 주점으로 들어섰다.

오랜 여행으로 베인 땀냄새가 일행들에게서 진동했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또 여행자로군. 데카론 사람들이오?”

주인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그렇소.”

“트리에스테를 구할 영웅들이지.”

가리온이 대답하자 파그노가 실실 거리며 옆에 붙었다. 그러나 주인은 피곤한지 파그노의 말을 받아주지 않았다.

“식사도 할 거요?”

“우선 쉬고 싶소.”

“가리온이 주인에게 방을 줄 것을 부탁하자, 모두들 따라서 요청했다.

“역시 잠이 보약이지.”

“그래. 좀 쉬고 그 다음에 허기를 채우자고.”

“좋았어! 드디어 제대로 쉬겠군!”

따뜻하고 푹신한 침대에서 쉬겠다는 기쁨에 들뜬 일행들은 각자의 방으로 흩어졌다.

“모두 모르고 있는 것인가?”

“무슨 소린가?”

“타마라가 없어요.”

“뭐?”

“그냥 쉬죠.”

룸바르트는 헤이치 페드론에게 어깨를 으쓱하고는 방으로 사라졌다.

모두가 달콤한 휴식을 취하는 듯 했다.

가리온은 그런 척 했다. 그러나 가리온은 방에서 쉬지 않았다. 방에 들어간 지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나왔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겼다. 가리온은 주인도 자신을 보지 못하도록 어둠 속에 몸을 숨겨 주점을 빠져 나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다녀와야 해.’

델카도르를 만났을 때, 가리온은 백기사단과 듀스 마블에 대해서 그리고 아버지 슈마트라 초이에 대해서 묻고 싶었다. 로아성에 성급히 온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일행이 전부 있는 곳에서 검성이 살아있음을 밝혀서는 안되었다. 그랬다가는 자칫 가리온이 알로켄의 피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발각될 수 있었다.

카론의 재앙, 그랜드 폴을 일으킨 것이 바로 알로켄족이었다. 가리온은 그 중에서도 이계의 문을 연 칼리지오 밧슈의 후손이었다. 그리고 비나엘르 파라이는 알로켄의 힘이 카론을 다시 부활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가리온은 알로켄족이라는 자신이 몸서리처지게 두려웠다. 얼른 아버지를 구하고 싶었다.

‘백기사단이 무엇인지, 듀스 마블이 왜 그들을 찾아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가 그곳에 있다면…!’

비나엘르 파라이는 가리온에게 듀스 마블이 백기사단을 찾아갔을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에 백기사단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로아성의 집정관 델카도르에게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아버지의 일에 관해 물어봐야 해.’

주점을 빠져 나온 가리온은 서둘러 델카도르에게 향했다.

그 시각, 일행을 벗어난 타마라가 델카도르와 함께 있었음을 가리온은 전혀 몰랐다.

“내일 오라고 했을 텐데?”

타마라는 그저 웃었다.

“그대들이 오기 전에 인카르의 전령이 다녀갔소. 그리폰이 편지를 물어다 줬지.”

델카도르는 차분히, 그러나 너무 심각하지 않게 말했다.

“가리온이라는 청기사단장이 올 것이고, 백기사단에 대해 알려주라고 하더군. 다만, 세그날레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지.”

“숨겨진 이야기는 나중에 밝혀지는 법이지요.”

“그래, 그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은 들으면 안 되는 조심스러운 이야기인가?”

델카도르는 자기가 한 말에 피식 웃었지만, 타마라는 더 웃지 않았다. 타마라의 얼굴에는 싸늘한 표정만이 있었다.

“그래요. 매우 조심스러운 이야기에요.”

“그래? 조심스러운 이야기로군.”

델카도르도 얼른 웃음을 거두었다.

타마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이었다.

“델카도르님은 트리에스테를 위해 일하시죠?”

“그건 자네 같은 세그날레한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타마라는 말을 멈추었다가 한참 후에 다시 시작했다.

“때가 되었습니다.”

타마라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작고 날카로웠다.

“델카도르님이 하실 일은 아주 작은 것입니다. 편지대로 가리온에게 백기사단에 대해 알려주시면 됩니다. 다만 최대한 그를 로아성에 잡아 두세요. 떠나야 할 때는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델카도르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너무 쉬운가요?”

타마라가 조소하듯 물었지만, 델카도르는 한참 후에야 반문했다.

가리온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델카도르의 집무실로 향했다.

로아성의 아름다운 광경이 창마다 비쳤지만 가리온의 눈에는 그러한 아름다움이 들어오지 않았다. 초조한 가리온에게는 어디든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았다. 모두가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곳에 왔다는 것이 발각되면 안돼.’

가리온은 조심스레 문 앞에 섰다.

‘서둘러서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가자!’

작게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안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이유는?”

가리온은 손을 멈추었다.

“….”

가리온이 가만히 기다리자, 다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중간자들이 만나게 될 것입니다.”

‘타마라!’

이어서 델카도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일행 중에 있군.”

가리온의 호흡이 가빠졌다.

“네. 사람과.”

똑똑.

가리온은 문을 두드렸다.

타마라가 하려던 다음 말을, 멈추기 위해서였다.

검을 들고 적을 대면한 것도 아닌데, 괜히 손에 땀이 찼다.

“누군가?”

델카도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가로 향했다.

가리온은 대답을 하려고 했지만,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말을 하려는 순간, 문이 열렸다.

“…!”

“자네, 청기사단장이군?”

델카도르의 목소리가 태연했다.

가리온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을 들여다 보았다.

“어머! 가리온!”

타마라가 가리온을 향해 웃고 있었다.

가리온은 어쩐지 조급해졌다.

“자네 안색이 좋지 않군.”

델카도르의 말에 가리온은 아무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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