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Testament - 새로운 약속 - 14장. Enmity. 대립하는 이유
| 21.01.13 12:00 | 조회수: 1,024


파도 소리를 타고 바람이 불어왔다.

숲을 건드리는 소리도 우르르 몰려왔다.

아무 생물도 볼 수 없는 고요한 숲의 시원한 바람이었지만 그것을 만끽할 여유는 없었다.

“그냥, 돌아가면 안될까요?”

파그노였다.

“임무는?”

가리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잔바크 그레이가 반문했다.

“뭐, 그건 그냥 보고 왔다고 둘러대. 겁나게 세 보이는 괴물들이 잔뜩 몰려 있었다고 하면 이곳에 와서 확인하려는 사람은 없을 거 아냐!”

“하지만 그건 거짓말이잖아요.”

시리엘 아즈였다.

“넌 싸우지도 못하면서! 조용히 해!”

파그노는 얼굴을 붉히며 윽박질렀다.

“오빠….”

놀란 칸이 물끄러미 오빠를 보았다. 파그노가 항상 약하긴 했어도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처음이었다.

“남고 싶은 사람은 남아. 가겠다는 사람만 함께 가겠다.”

가리온은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듀스 마블과 아버지의 자취를 찾아서 가야만 했다.

아발론 섬을 허락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계의 문과 가까운 곳이라면, 이계와 관련이 깊은 곳이라면, 카론을 부활시키려는 듀스 마블이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발론 섬은 세그날레들의 섬, 그야말로 이계와 관련이 깊었다.

“가리온….”

룸바르트는 가리온의 이름을 나직이 부르는 에바를 뚫어져라 보았다.

“나도 가겠어요.”

“역시나.”

룸바르트는 에바가 가겠다고 할 줄 알고 있었다.

“저도 가겠습니다.”

잔바크 그레이가 지원했다.

“저도….”

잔바크 그레이를 따라 칸이 손을 들었다.

칸은 파그노를 보았다.

파그노는 땅을 발로 차더니 뒤돌아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여기서 기다리겠네.”

헤이치 페드론이 시리엘 아즈를 물러서게 하며 말했다.

“… 치료할 수 있는 만큼만 다치게.”

에바가 가리온을 대신해 인사했다.

이제 선택해야 할 사람은 룸바르트 뿐이었다.

“나는….”

룸바르트는 천천히 에바에게로 걸어갔다.

“당신이 가자고 한다면.”

“그냥 남으세요.”

에바는 가리온을 향해 홱 돌아섰다.

“너무 유치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야? 도움이 필요할 때는 부탁할 줄 아는 융통성도 있어야 하는 법이야.”

가리온을 따라 에바와 룸바르트, 잔바크 그레이와 칸이 걷기 시작했다.

그들은 곧 작은 숲 안으로 들어갔다.

적막은 두려움을 주었지만 누구도 함부로 그것을 깨지 못했다. 간간히 들려오는 바람과 파도 소리만이 있었다.

일행은 누군가 고요를 깨뜨려 주기를 원했고, 곧 그렇게 되었다.

“키키키.”

바람 소리 끝에 날카로운 웃음 소리가 묻어 왔다.

“드, 들리죠?”

당황한 칸이 물었다. 에바는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가리온 쪽으로 모였다.

“오호. 이건 타마라 느낌인데.”

룸바르트는 언뜻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 주었다.

“그렇지. 하지만 타마라는 아니야.”

가리온은 고개를 들어 위를 보았다.

바람이 한번 더 불었다

“하하… 하하….”

바람이 나뭇잎을 때리는 방향을 따라 웃음 소리가 따라갔다.

“제길. 그냥 나올 것이지.”

잔바크 그레이는 불안한 내색이었다.

“뭐가 나올까?”

“세그날레.”

“오. 에바. 당신이 나의 누추한 질문에 대답을 해주다니!”

“대답했으니까 이제 좀 조용히 해요.”

바람이 또 불었다. 희미한 소리가 귀를 집중시켰다.

“뭐… 라고 하는 거죠…?”

“돌아가.”

에바는 칸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살고 싶다면 돌아가.”

“설마!”

두려움에 빠진 칸이 소리를 지름과 동시에 붉은 채찍이 날아들었다.

아니, 그것은 채찍처럼 생긴 핏줄기였다.

“피해!”

차악. 착.

핏줄기는 부드럽게 땅을 한 번 치고 공중으로 솟아 빙빙 돌았다.

모두들 밖으로 밀려났다.

“으아악!”

“칸!”

칸의 갑옷에 핏줄이 선명했다.

“에… 에바!”

“또 날아들 거야! 계속 움직여!”

에바는 칸을 피하도록 한 후, 화살을 꺼내 조준했다.

“가리온.”

가리온은 이미 채찍을 향해 달려 들고 있었다. 크루어가 채찍을 반으로 잘랐지만, 피가 다시 뿜어 나왔다. 가리온은 그냥 검으로 베는 것만으로는 이 채찍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모두에게 외쳤다.

“도망쳐!”

핏줄기는 그 사이에 가리온에게 들러붙었다. 에바는 조준했던 화살을 놓았다.

“에바! 뒤에!”

어느 틈에 핏줄기 여러 개가 사방을 난도질하고 있었고, 그 중 하나는 에바에게 달려들었다.

“안돼!”

놀란 에바를 룸바르트가 안고 뒹굴었다.

“이 바보야! 피하라면 피해야 할 거 아니야! 바보같이 가리온만 보고 있으면 어떡해!”

“하지만…. 가리온은….”

에바는 엉거주춤 일어섰다.

“언제까지 그럴 거야! 저 녀석은 자기 밖에 몰라! 모르겠어? 우리를 생각했다면 이런 곳에는 오지 않았을 거야!”

에바의 눈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한 룸바르트가 있었다.

에바는 목이 메는 듯 해서 말을 잘 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가리온….”

“지금은 그런 거 신경 쓸 때가 아니야! 어서 도망쳐야 해!”

룸바르트는 에바의 손을 잡아 끌었다.

에바는 끌려가면서도 뒤를 보았다.

가리온 앞에 빨간 채찍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다.

룸바르트는 에바의 손을 잡고 계속 걸었다.

둘은 숲을 나가 헤이치 페드론과 만날 생각이었지만 작은 줄만 알았던 숲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야.”

“…. 길을 잃은 걸까?”

“잠깐 멈출까?”

에바는 룸바르트와 잡았던 손을 어색하게 빼냈다.

“하아.”

에바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몰아 쉬었다.

“아무래도. 당신 말이 맞는 것 같군.”

“그렇지? …. 다른 사람들은 괜찮을까?”

에바가 가리온에 대해 묻는 것임을 룸바르트는 알고 있었다.

“글쎄….”

“…. 다시 돌아가.”

“이제야 나한테 말을 놓는군.”

“돌아가고 싶지 않아?”

룸바르트는 대답하지 않았다.

“왜 그렇게 가리온을 미워하지? 복수는… 할 만큼 했잖아?”

룸바르트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그것은 복수 같은 것과는 전혀. 틀린 거야. 그. 기분은….’

에바는 왔던 길을 돌아보았다.

“가야 해.”

“후우.”

“우리만 도망칠 수는 없어.”

“천사가 따로 없군.”

“나를 믿어 준 사람들을 배신해서는 안돼.”

그것은 에바가 파르카 신전에서 얻은 것이었다. 클로비스로부터 얻은 소중한 것이었다.

“다 피지 지노 누 파이라사 시비 그류페인.”

에바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룸바르트 옆에 진홍빛의 꼬리를 뽐내는 그류페인 한 마리가, 그야말로, 나타났다.

“그냥 돌아갈 순 없지. 순한 놈이라,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거야.”

“룸바르트… 당신…!”

룸바르트는 평소처럼 웃었다.

“왜? 두려워?”

델카도르가 지금보다는 훨씬 젊었을 때였다.

그때부터 학자적인 면모가 강했던 델카도르는 무척이나 열정적으로 트리에스테 역사의 연구에 임하고 있었다. 그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 들었다.

그 결과, 델카도르는 많은 수확을 거두었다.

자신이 욕심을 부렸던 각종 보물들은 물론 트리에스테 대륙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모을 수 있었다. 또, 영광스럽게도 조디악으로서 추천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델카도르는 조디악이 될 수 없었다.

헬리시타를 떠난 델카도르는 얼마 후 로아성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지만 사실 델카도르는 로아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그는 엄연히 헬리시타 출신의 귀족이었고, 가족들을 비롯한 탄탄한 뒷배경도 모두 헬리시타를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문제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문제될 것도 없었다. 트리에스테 대륙의 많은 사람들이 헬리시타를 기반으로 두거나, 거쳐갔다.

그러나 그가 조디악이 될만한 자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를 물린 것에 대해 사람들은 끊임없이 입방아를 찧었다.

헬리시타 내에서의 내압으로 그가 로아성으로 유배 당한 것이다, 조디악이 되는 대신 우선 로아성을 가지고 세력을 확장시키려는 속셈이다….

트리에스테 대륙의 권력가, 유명인, 지식인 할 것 없이 델카도르를 가지고 수없이 엎고 뒤집었다.

물론 델카도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는 로아성을 잘 다스려 나갔고 자신의 방법대로 로아성을 지켜나갔다. 델카도르는 뛰어난 사학자답게 로아성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옛 것을 존중했고, 예전의 방식도 고수했다.

로아는 계급의 차별이 극심했지만, 자유로운 사람들이 사는 도시였다. 아름다운 로아성 안에서 시장은 활기찼고, 사람들은 미소를 지었다.

교만한 귀족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북적이는 곳에는 나타나지 않았다.

델카도르는 현재에 만족하고 있었다.

“로아는 그냥 이대로이기만 하면 돼….”

그 때, 집무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델카도르!”

“메리엘?”

“그들이 돌아왔어요!”

"그들이?"

떠난 지 삼 일째 되던 날. 로아 성에 도착한 가리온의 일행은 전부 9명. 출발 때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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